[에듀플러스]기후기술 창업 트렌드: 실리콘밸리 현장에서 본 혁신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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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길 서울대 교수.

최근 2024 아산유니버시티 해외 필드트립의 일환으로 실리콘밸리를 방문하며 기후기술(Climate Tech) 창업 분야의 최신 동향을 직접 목격할 기회를 가졌다. 이번 방문을 통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혁신적인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기후 변화는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이다. 국제기후변화패널(IPCC)에 따르면,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 감축해야 한다.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기존 산업의 혁신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의 등장이 필수적이다. 기후기술은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받고 있는 분야이다.

'PwC 기후기술보고서 2021'에 따르면, 2020년 하반기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기후기술 투자액은 875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10% 성장하였으며 2021년 상반기 기후기술 투자액은 전체 VC 투자액의 14%를 차지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최근 수년간 기후 변화에 대한 인식 제고와 함께 관련 기술의 발전, 정부의 지원 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번 필드트립에서 방문한 DCVC(Data Collective Venture Capital)는 기후기술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벤처캐피탈로서, 운용자산은 35억 달러에 이른다. 딥테크와 빅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혁신적인 기술 기업에 투자하여 산업 변혁을 주도하고 있다. DCVC의 투자 철학은 '딥테크 모델' 또는 '딥테크 플라이휠'이라 불리는 독특한 접근법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는 깊은 산업 전문성을 갖춘 기업가, 독특하고 독점적인 데이터, 고급 AI 또는 혁신적인 알고리즘적 계산 접근법, 그리고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선순환을 통한 경쟁 우위 확대를 핵심 요소로 한다.

DCVC의 투자 전략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데이터와 컴퓨테이션(데이터 처리 연산)을 통해 CapEX(자본지출)와 OpEx(운영비용)를 효율적으로 줄여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DCVC는 컴퓨테이션과 데이터 중심의 접근법을 통해 전통적인 물리적 연구 개발 과정을 혁신함으로써, 상용화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접근법은 특히 자본 집약적이고 상용화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불문율로 여겨졌던 기후기술 분야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DCVC는 이를 통해 벤처 규모의 자금으로도 획기적인 혁신과 빠른 상용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DCVC의 기후기술 투자 사례 중 주목할 만한 기업으로는 Pivot Bio, Fervo Energy, Zwitterco 등이 있다. Pivot Bio는 합성 비료를 대체하는 맞춤형 미생물 기반 솔루션을 개발하여 농업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 감소에 기여하고 있다. Fervo Energy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곡선을 빠르게 따라잡아 기존 대비 지열 에너지 생산의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이고 있으며, Zwitterco는 새로운 수처리 멤브레인 기술을 통해 기존에 처리가 어려웠던 수자원까지 정화할 수 있게 하여 물 부족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있다.

이번 방문에서 또한 AI 로봇 기반 재활용 기술 스타트업인 글레이셔(Glacier)를 방문하였다. 글레이셔는 아마존 기후서약기금(Climate Pledge Fund) 내 '여성 창업가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투자를 유치한 기업으로, 쓰레기 분리수거를 위한 혁신적인 AI 로봇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글레이셔의 공동창립자인 아렙 말리크(Areeb Malik)과의 인터뷰를 통해 회사의 비전과 기술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말리크는 “우리는 제조업의 미래, 우리가 물건을 얻는 방식의 미래가 순환적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천연자원을 추출하여 물건을 만드는 것을 중단하고 폐기물에서 자원을 추출하기 시작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글레이셔의 핵심 기술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인공지능(AI) 기반의 로봇 팔로서, 이 로봇은 컨베이어 벨트 위를 지나가는 다양한 재활용 물품을 식별하고 분류할 수 있다. 말리크에 따르면, 이 로봇은 30종 이상의 재활용 재료를 식별할 수 있으며, 기존 재활용 시설에서 처리하기 어려운 비닐봉지나 쓰레기 봉투까지 분류할 수 있어 재활용 효율을 크게 높인다.

둘째는 AI 기반의 데이터 분석 시스템으로, 재활용 시설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재활용품의 종류와 양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재활용 시설의 운영 효율을 높일 뿐만 아니라, 브랜드, 정부, 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중요한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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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번 투어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실리콘밸리의 기술 스타트업들도 한국의 창업가들이 겪는 많은 어려움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과 비즈니스 사이의 간극, 대학 창업 시 지식재산권(IP) 문제, 초기 창업자들이 겪는 막연함, 자금 조달의 어려움 등은 실리콘밸리에서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실리콘밸리가 가진 강점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인프라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점이다. DCVC와 같은 전문화된 벤처캐피털, 글레이셔와 같은 혁신적인 스타트업,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다양한 네트워킹 플랫폼은 기술 창업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의 기후기술 창업 생태계도 이러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사업화 지원 시스템 강화, 지식재산권 관리 개선, 글로벌 기술창업 네트워크 확대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울대학교의 SNU-Asan UniverCT 사업은 주목할 만하다.

본 사업을 수행하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은 단순한 창업지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후기술 스타트업들이 직면하는 다양한 도전을 종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가고 있다. 다양한 교육 및 멘토링 프로그램 운영, 투자자 네트워크 구축, 산학협력 기회 마련, 글로벌 진출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기후기술 창업 생태계를 지원하고 있다.

이는 실리콘밸리의 성공적인 창업 생태계를 한국의 상황에 맞게 적용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기후기술 분야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기후 변화 대응 기술은 대부분 고도의 전문성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만큼, 대학의 연구 역량과 비즈니스 세계를 연결하는 이러한 플랫폼의 역할이 핵심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후기술 창업 생태계는 실리콘밸리의 성공 사례를 참고하되,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한 독자적인 모델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 기술과 비즈니스의 조화, 산학연 협력,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등을 통해 한국만의 강점을 살린 기후기술 창업 생태계를 만들어 나간다면, 글로벌 기후 위기 대응에 기여함과 동시에 새로운 경제 성장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모델이 다른 대학들로 확산되고, 나아가 대학 간, 지역 간 협력으로 발전한다면, 한국의 기후기술 창업 생태계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개별 기업의 성공을 넘어, 국가 차원의 기후위기 대응 능력 향상과 새로운 경제 성장 동력 창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기후위기라는 도전과 기술 혁신의 기회가 교차하는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래를 위한 혁신을 이뤄내는 것이 우리 세대의 책임일 것이다.

김장길 서울대 교수

※본 기고문은 아산나눔재단이 운영하는 기후테크 창업가 육성 사업인 '아산 유니버시티(Asan UniverCT, Climate Tech)'를 소개하고, 해당 사업과 협약을 맺은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카이스트 등 4개 대학이 8월 다녀온 글로벌 탐방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공유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