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논술 문제 유출로 논란이 된 연세대를 상대로 수험생들이 '시험 무효' 소송을 제기하면서 과거 사례가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해 전남대 미술학과 한국화 전공 실기시험에서 출제 오류가 확인됐다. 당시 수시모집 요강에는 '수묵담채 실기시험 정물 21개'를 제시했지만, 실기시험에 21개에 포함되지 않은 정물이 출제된 것이다. 수험생들은 실기시험을 마친 뒤 전남대에 이의 제기를 신청했다.
전남대 측은 정물 21개 중 3개가 다른 것으로 파악하고 “시험의 오류가 확인돼 수묵담채 2개 분야 실기 과목 점수를 무효화 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대학은 재시험을 실시했다.
2020년 동아대에서도 감독관 실수로 재시험이 결정된 사례가 있다. 당시 공예학과 수시 실기 고사는 수험생 106명이 3개 반에서 제시된 2개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지만 1개 반이 1개 주제로 실기시험을 치렀다. 시험 종료 이후 수험생들이 오류를 확인하고 학교 측에 이의 신청을 했다.
동아대 측은 동일한 조건에서 시험이 진행되지 않은 것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재시험을 결정했다. 대학은 시험 비용에 들어간 전형료와 교통비를 수험생에게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에는 강릉원주대에서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다. 패션디자인학과 실기고사가 2개 고사장에서 치러졌다. 한 시험장에서는 감독관이 기초디자인 소재를 나눠주고 시험을 치렀지만, 다른 시험장에서는 기초디자인 소재를 배부하지 않았다. 이후 시험 시작 약 40분이 지난 뒤 감독관이 실물을 나눠준 것으로 알려졌다.
강릉원주대 역시 수험생과 학부모의 반발로 재시험 결정을 했다. 그러나 대학이 제시한 시험 일자에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인원이 절반에 그치면서 대학 측은 재시험을 보지 않기로 결정했다. 재시험 결정 번복에 수험생의 반발이 일기도 했다.
이처럼 대학 측의 잘못으로 재시험이 치러진 사례가 있긴 하지만 연세대의 경우 문제 유출 가능성 등 사안이 보다 복잡하다. 특히 연세대의 경우 대학이 “공정성 측면에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앞선 사례와 차이가 있다. 교육부 역시 “재시험 판단은 대학 몫”이라며 연세대 쪽으로 판단을 미뤘다. 수험생 입장에서는 진행 중인 경찰 수사와 수험생이 제기한 소송의 재판 결과를 기다려야 할 수밖에 없다.
교육계에서는 재시험 여부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현실적으로 재시험을 치르기에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A대 입학처 관계자는 “대학이 수시 비중을 넓혀가고 있는데 이런 일이 자꾸 발생하면 수험생은 수시 공정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서 “누가 봐도 학교 측의 실수가 있었던 상황인데 재시험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B대 입학처 관계자는 “과거에 재시험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학의 명백한 잘못이 확인되면 당연히 재시험을 치를 수 있다고 본다”며 “다만 통상 재판은 시일이 오래 걸려 연세대 잘못이라고 판결이 나오더라도 시기상 재시험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연구소장은 “이미 수시 일정이 시작된 상황에서 재시험은 어려울 것”이라며 “한 고사장으로 인해 재시험을 치른다고 하면 다른 고사장에서 시험을 치른 학생들 입장에서는 역차별이란 얘기가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 소장은 “일각에서 연세대가 재시험을 치르고 일정을 미룰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하지만, 연세대 하나로 다른 입시 일정에 변경이 생긴다면 그것대로 문제가 된다”면서 “연세대 입장에서는 대책 마련과 사태 방지에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지희 기자 eas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