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염재호 국가AI위원회 부위원장 “AI는 문명사적 대전환…새 국가 디자인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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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호 국가AI위원회 부위원장(태재대 총장)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우리나라가 인공지능(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국가인공지능(AI)위원회가 26일 출범했다.

국가AI위원회는 민·관 역량을 총 결집해 국가 전체 AI 혁신 방향을 이끌 위원회로 대통령 직속으로 구성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았다.

부위원장으로 임명된 염재호 태재대 총장은 '디지털 신질서 정립 협의체' 의장과 'AI전략최고위협의회' 공동위원장을 역임했다. 민·관 AI 최고위 거버넌스인 AI전략최고위협의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격상한 것이 국가AI위원회이다.

당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도로 만들어진 조직을 다양한 정부 부처가 참여해 대통령 주재 자문기구 중 사실상 최대 규모로 구성됐다. 국가가 직접 AI 전략을 챙긴다는 의미다.

염재호 국가AI위원회 부위원장은 “AI는 문명사적 대전환”이라며 “AI를 단순 기술 문제나 산업 문제에서 나아가 넓게는 새로운 국가 디자인까지 같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국가AI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소감이 궁금하다.

▲AI 전공자는 아닌데 맡게 돼서 어깨가 무겁다. AI가 단순하게 기술의 문제 또는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사를 바꾸는 대전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미가 깊다고 본다.

건국, 그리고 민주화 이후 미래지향적 사회와 국가 대개조 측면에서도 굉장히 좋은 터닝 포인트라고 여긴다.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시점에 의미있는 일을 맡아 영광스럽다.

디지털 신질서 정립 협의체 의장을 하고, 아시다시피 4월부터 AI전략최고위협의회 공동위원장을 과기정통부 장관과 같이 하기도 했다. AI·디지털 사회로 갈 때 뉴노멀이 어떻게 바뀌게 되는가를 두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늘 강조한 것은 단순 기술, 산업 문제를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AI가 바꾸는 사회라는 것은 교육, 법률 의료 나중에 정치 시스템까지도 다 바뀔 수 있다. 복합적이고 체계적인 큰 그림을 그려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미래를 어떻게 상상하고 있나.

▲미국에서 박사학위 논문 쓸 때 컴퓨터 반도체 첨단 산업 정책을 했다. 관심이 많다. 20년간 고려대 교수로 미래사회와 조직을 줄곧 다뤘다.

우선 미래가 어떻게 바뀌는 지를 알아야 한다. 제러미 리프킨과도 만났는데,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니까 사람들이 잘 인식을 못 한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미디어는 인류 문명을 크게 바꿨다. 1455년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성경을 인쇄했다. 천년 이상 종교가 지배하던 사회였던 유럽이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됐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르네상스, 그리고 과학에서 코페르니쿠스가 나왔다. 왕이 절대 권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게 아니라 인간이 제일 중요한 권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는 멈추지 않고 미국의 독립혁명, 대통령제 기반의 민주주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금속활자 하나로 이렇게 다 영향을 미친 것이다. 문명사의 아주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었다.

작년 생성형 AI 확산으로 2023년은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70년 전부터 AI 이야기는 있었지만, 'GPT 4.0'가 나오면서 충격적 변화가 본격화됐다.

AI 디지털 교과서도 많은 변화를 줄 것이다. 태재대는 가르치는 사람은 코치나 퍼실리테이터(조력자)가 돼야 한다고 한다. 가르치는 것은 AI가 더 잘 가르친다. 이미 그렇게 가고 있다.

태재대 학생은 일본어 중국어 등 제2외국어도 중급 이상 해야 하는데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온라인 플랫폼 유데미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듣고 교수는 코치만 한다.

앞으로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질 텐데 어떻게 현명하게 디자인할 것인가. AI위원회가 이러한 아이디어를 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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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호 국가AI위원회 부위원장(태재대 총장)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우리나라 목표는 세계 3대 AI 강국이다. 지금 역량이나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대통령실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AI반도체 등 AI국가역량으로는 6위 정도 된다고 한다. AI 반도체, 소프트웨어, 데이터센터 등 다양한 측면에서 역량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처럼 무조건 AI 자체 플랫폼을 가져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 응용 분야에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 젊은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내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AI는 사회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 것이다. 예를 들면 실험실에서도 단백질 분자식을 만드는 것이 매우 어려웠는데, AI가 인간이 생각하지 못한 단백질 디자인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처럼 AI를 통한 다양한 상승작용이 계속 일어날 것이다.

레이 커즈와일이 2005년에 '특이점이 온다'는 책을 썼는데, 올해 6월에 AI가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의 시간이 더 빨리 온다며 책을 다시 내놨다. 이전에는 2045년을 특이점이 오는 시기로 봤는데 이를 2029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이점은 비약적 도약이 일어나는 지점이다. 이때가 되면 기존에 인간이 풀지 못하는 많은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화될 것이다.

그래서 AI 문화가 중요하다. AI를 무서워하지 말아야 한다. 처음 자동차가 나왔을 때 사람들이 무섭다고 했다. 사람을 능가하는 것 아니냐고. 지금은 아무도 자동차와 달리기 경쟁을 하지 않는다.

자동차에서 제일 중요한 기능은 액셀러레이터(가속페달)가 아니라 브레이크다.

브레이크는 두 가지 기능이 있는데, 멈추는 작용도 하지만, 속도를 조절하는 기능도 있다.

AI 윤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AI가 여러 가지 역기능도 있겠지만 결국은 갈 수 밖에 없다. 비가역적이다. 19세기 말에 유생들이 근대화를 반대한다고 상투도 못 자른다고 했지만, 어떻게 됐느냐.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타다'도 안 되고, '우버'도 안 되고, 하는데 이런 생각은 버려야 한다.

1900년에 뉴욕시 부활절 퍼레이드가 전부 다 마차였다. 딱 13년 뒤, 1913년에 전부 포드자동차로 바뀌었다. 마부들이 직업을 잃는 것을 걱정했지만 기사 직업이 훨씬 더 많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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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호 국가AI위원회 부위원장(태재대 총장)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우리가 가진 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해야 할까.

▲우리가 강점이 있는 대표 산업이 반도체다. 반도체는 기계 문명에서 쌀과 같은 핵심이다.

AI를 이용해 반도체 디자인 등을 더 잘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지금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미국, 일본도 반도체에 엄청나게 투자를 하는데 우리는 아직 용수 공급조차 지역에서 해결을 안 해준다. 전기도 문제다. 국가가 지원을 해야하는데,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바이오 분야도 중요하다. 인간 생명이 늘어나면서 질병이나 신체의 연약한 부분들을 보충해줄 것도 늘어나고 있다. 엄청난 산업이 될 것이다. AI가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교육도 중요하다. 태재대는 교사 없는 교과 과정을 만들고 있다. 교수는 가르치기보다는 학생이 배우는데 퍼실리테이터 역할에 충실해야 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수업진행의 시나리오를 만드는데 에너지를 써야 한다.가르치는 것은 AI가 더 잘 할 수 있다. 이런 수업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면 대학 진학률이 낮지만 성장가능성이 높은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 온라인 교육으로도 활용할 수도 있다.

우주개발이나 일론머스크가 추진하고 있는 '하이퍼루프' 같은 기술 개발에도 국가적 역량을 투입해 AI를 개발, 적용할 수 있다.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에는 어떤 지원이나 전략이 필요한가.

▲전통적 중소기업, 소위 하청 또는 협력업체는 이제 중국이나 인도, 베트남과 비교하면 경쟁력이 떨어진다. 창의적 아이디어나 고부가가치 사업을 해야 한다. 대기업도 머리 숙일 수 있는 기술을 가져야 한다.

중소기업은 대학과 협력해 더 많이 연구해야 한다. 독일은 공대 교수들은 반드시 기업 경험이 있어야 하고 기업과 일을 해야 한다. 대학도 정부 연구개발(R&D) 비용 지원을 받아서 논문만 쓰는 것에서 달라져야 한다. 대학의 규제를 과감하게 풀고,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도 지원을 하는 방식도 AI 시대에 맞서 완전히 바뀌어야 된다. 첨단산업 정책을 연구하면서 프랑스 사례를 자주 든다. 프랑스 전자산업이 망가진 이유가 정부 지원에만 의존했던 패밀리 비즈니스의 특성 때문이었다. 정부의 비닐하우스에서 기업들이 안 나오려고 한 것이다.

정부가 직접 보조금을 주는 것 등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기업 간 경쟁은 치열해야 한다.

정부 정책도 AI를 이용하게 되면 보다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지금 국가 간 밸류체인이 깨지고 디커플링되는 것이 추세다. 다 자국 중심으로 가고 있고 보호무역 추세가 강화돼 산업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정부 조직도 그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국가정보원도 과거의 간첩 잡는 개념이 아니라 국가의 핵심 광물 자원 등의 확보부터 이러한 주요 정보를 꿰뚫는 조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계청도 빅데이터청으로 바뀌고, 선제적으로 국가 디자인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우리 정부 조직도 거의 일제 강점기에 있던 것을 짜깁기해 고쳐온 개념이다. 앞으로 대상 중심이 아니라 개념 중심으로 정부 조직 변화에 많은 아이디어를 낼 필요가 있다.

국가AI위원회는 중장기적 정부 조직의 변화까지 염두에 뒀으면 한다. 아직은 내 생각이고, 위원을 맡은 장관들하고도 협의를 해봐야 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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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호 국가AI위원회 부위원장(태재대 총장)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AI 시대에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가.

▲예를 들어 태재대에선 개인적 역량을 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 자기주도학습, 3가지로 나눠 교과목을 만들었다. 또 중요한 것이 사회적 역량이다. 사회적 역량은 소통과 협력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설득하고 양보하고 이런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로 다양성과 공감능력도 중요하다. 세 번째가 글로벌 하모니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우리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길게 보면 큰 피해가 될 수 있다. 자기한테 불리하더라도 정직해야 된다. 이게 깨지면 리더가 안 된다.

AI 시대일수록 많은 데이터들이 공유될 것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사회는 좀 더 투명해질 것이고, 그런 사회에서 리더십은 이런 가치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염재호 국가인공지능위원회 부위원장=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와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한국과학재단 이사,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 외교부 정책자문위원장, 한국정책학회 회장 등을 거쳐 고려대 제19대 총장을 역임했다. 2023년부터 태재대 총장을 맡고 있다.

김명희 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