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상임위원 5명이 정원인 방통위는 지난해 8월부터 1년가량 대통령 추천 몫의 위원장과 부위원장 두 명으로 구성된 채 파행 운영 중이다. 야당 탄핵안 발의→위원장 사퇴→인사청문회 개최→야당 탄핵안 발의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전자신문은 이 같은 파고를 뛰어넘을 해답을 찾기 위해 방통위에 대해 오래 고민해 온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제언을 들었다. 이들은 “방송·통신 정책 주무조직을 계속 정치적 소용돌이에 놔둬선 안 된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시대적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변화하지 않으면 존재이유가 없다. 발전적 해체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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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해법 전문가 제언

◇존폐 기로에 선 방통위…따끔한 지적 이어져

방통위는 국내 유일의 여야 합의제 행정 조직이자 국내 첫 방송통신융합기구다. 노무현 정부가 국무총리 소속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를 통해서 설계하고,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시켰다. 세계적 흐름이었던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시대적 변화를 수용하기 위해 민간기구인 방송위원회와 행정기관인 정보통신부가 통합돼 탄생했다.

방통위 부위원장을 지낸 김충식 가천대 부총장은 “방통위는 미국 연방 방송통신위원회(FCC)와 그 합의제를 모델삼아 만든 것이지만, 미국과 달리 한국 방통위는 합의가 잘되지 않고 극한 대결뿐”이라며 “방송과 통신의 융합 추세에 대비한 행정기구를 만들자고 하는 당초 취지에 충실해야 하는데, 방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정쟁이 이 지경으로 끌고 왔다”고 진단했다.

송경재 상지대 사회적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16년 동안 방통위는 어느 정권에서도 조용한 적이 없었다”며 “정치권 추천 인사들은 국민을 위한, 이용자를 위한 방송·통신 정책을 고려하기보다는 정부와 정당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정책 방향에 따라가기 바빴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장기간 비정상적으로 운영된 탓에 좀처럼 정상화를 위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김희경 미디어미래연구소 연구위원은 “방통위는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다. 사실상 지상파 인허가, 종편 재승인 업무만 하고 있다”며 “김태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도 얼마 전 청문회에서 위원회가 무력화됐다고 말하지 않았나”고 지적했다.

실제 김태규 직무대행은 1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방송장악 관련 2차 청문회'에 출석,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과 관련해 “방통위가 답변해야 할 부분인데 위원회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구성 분자에 지나지 않는 위원인 나는 답변할 권한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방통위는 당초 기대와 달리 공영방송을 둘러싼 정쟁으로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운 모델이라는 점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고삼석 동국대 석좌교수는 “'합의제 위원회'라는 제도가 잘못됐든,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잘못했든 현재 방통위 상황은 방통위라는 제도의 설계와 운영 양 측면에서 모두 '실패했다'는 결론을 내려도 이상하지 않다”고 밝혔다.

◇발전적 해체냐, 해체적 발전이냐

방통위의 허울뿐인 독립성과 합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방통위에서 방송을 분리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김충식 부총장은 “행정이 이토록 볼모잡혀 희생당하면, 결국 방송과 통신을 따로 분리시키는 것을 검토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성엽 교수는 “공영방송 이슈가 다른 모든 방송·통신 현안을 뒤덮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공영방송을 분리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전했다. 중장기적으로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과학기술, 정보통신, 유료방송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공영방송은 독립규제위원회인 신설 공영방송위원회로 이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유료방송 정책과 통신 및 인터넷 정책은 독임제 부처인 과기정통부로 이관하고 공영방송 지배구조, 관리·감독에 관한 업무는 여야 합의제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방송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니 방송과 통신을 분리하자는 말도 있는데, 그건 전기차에 불이 많이 나니 전기차 없애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방송위원회를 없애고 지금의 방통위를 만들 때 이미 방송 시장 자체가 줄어들고 산업적으로는 기존의 언론 기능을 중심으로 한 방송정책은 하나의 부처를 만들 만큼의 규모가 안 됐는데 지금 방송을 떼어서 뭘 만들 수가 있겠나”고 말했다.

심 교수는 “기구의 독립성, 전문성을 키워서 정치 싸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어야지 기구 자체를 맨날 안심하고 싸움만 해도 되도록 만들어준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방통위 소관 업무 중 쟁점이 되는 것은 공영방송 이사 추천 권한이다. 방통위 의결에 따라 공영방송 지배구조가 바뀌게 돼 정치 논리가 그대로 작동한다. 전문가들은 정치권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데 입을 모았다.

송경재 교수는 “방송과 통신 분야에 대한 전문적 식견이 요구되는 자리임에도 정치인 출신, 또는 선거캠프 경력 인사들이 추천돼 정작 방통위 전문성은 약화했다”며 “대부분 정치적 배경, 방송 또는 신문사 출신 인사, 시민단체 관계자, 법조인 등이 추천됐고 인터넷 통신 정책 전문성을 가진 인사는 추천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최소한 통신과 방송의 전문적 영역에서 중립적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심의할 수 있는 제도 설계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심석태 교수는 “기본적인 방법으로 방통위원으로 임명될 수 있는 사람들 자격을 제한해야 한다”며 “특정 정당의 선거캠프 등에서 공식 직책을 맡았던 사람, 인수위에서 공식 직책을 맡아 활동했던 사람, 대통령의 정무직 참모, 정당 당원 등이었던 사람은 해당 직이나 신분을 떠난 지 3년 이내에는 임명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은 “방통위 현재 구조나 인사 방향은 정치적 후견주의로 노골화돼 있다”며 “전문성보다는 내 편을 앉히는 게 중요하다 보니, 방통위가 정파적 싸움에 휘말려 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위원은 “방통위원을 정파적 색채를 뺀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관의 위상을 높일 필요성도 제기됐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장은 “디지털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사후규제를 보다 정교화하고 이용자 보호 관련 기능을 강화해 나가야 하는 시점”이라며 “생성형 AI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변화 등을 고려할 때 방통위의 업무영역을 확대하는 것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심석태 교수는 “방통위는 쓰임을 다했다는 주장의 상당 부분이 기구 운영의 여러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인데, 방송통신 융합이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대라는 점에서 오히려 방송통신을 융합한 규제기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선관위·인권위 등 새로운 운영 모델 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나 국가인권위원회처럼 정부로부터 독립된 새로운 규제기구 운영 모델이 제시됐다. 기존 합의제가 아니라 독임제로 돌아가는 것은 '관치'로 회귀하는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기존 방통위 구조의 장점을 버리지는 말자는 것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컨텐츠융합학부 교수는 “방송이라는 중요한 매체를 다루는 정책은 독임제적인 결정으로 이뤄지면 안 된다”며 “합의제 방식을 통해 독단적인 행정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방통위원들이 기능과 업무를 수행할 때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도록 방통위가 헌법·법률상의 위상을 정립하는 게 필요하다”면서 '국가인권위원회' 모델을 언급했다.

김희경 연구위원은 “방송의 자유 측면에서 독임제가 아닌 합의제로 가되, 지금처럼 변칙적 운용을 방지할 수 있는 법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며 “지금 방통위는 합의제 기구가 아니라 종속적인 대립제 기구”라고 말했다.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도 합의제 독립기구인 방통위의 설립 취지를 강조했다. 안 교수는 “합의제 행정기관인 방통위의 독립성 강화를 위해 법·제도적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과 통신을 함께 규제하는 현재의 방통위, 그래서 공영방송을 둘러싼 정치적 충돌이 반복해서 발생하는 합의제 위원회 제도는 고쳐 쓰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고삼석 교수는 “방통위 정상화는 단순히 현 정부 하에서 여야 간 주도권 다툼을 종식시킬 수 있느냐를 넘어서 다음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방통위가 정쟁에 휩쓸리지 않고 '시대적 미션'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의 기준이자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교수는 “방통위 정상화라는 좁은 목표보다는 정부가 해야 할 방송 및 정보통신 미션을 중심으로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정부 조직의 전면적인 개편까지도 추진할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방송과 정보통신 전담 조직을 다시 분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자는 얘기는 아니다. 이 경우 방송 전담 조직은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처럼 운영의 독립성을 철저하게 보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제언해주신 전문가 명단(가나다순)

고삼석 동국대 석좌교수(전 방통위 상임위원),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 김충식 가천대 부총장(전 방통위 부위원장), 김희경 미디어미래연구소 연구위원,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장, 송경재 상지대 교수, 심석태 세명대 교수, 안정상 중앙대 겸임교수, 이성엽 고려대 교수,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


권혜미 기자 hyemi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