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청년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농업·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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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수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그냥 뭘 들고 다니기가 싫어요. 삶의 무게도 버거운데.”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는 한 대학생에게 왜 가방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지 이유를 물었더니 나온 답변이다. 인터넷에 유명한 밈이 되어버린 이 인터뷰가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한 청년세대의 지쳐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 단순히 한 청년의 고단함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최근 농업·농촌에서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이 고된 삶에 지친 청년세대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 본다.

농업은 더 이상 청년세대가 기피하는 직업군이 아니다. 농업은 정보기술(IT), 인공지능(AI) 등과 결합하면서 스마트팜이나 첨단농기계와 같이 젊은이들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계획할 수 있는 매력적인 선택지로 다가서고 있다.

포스텍 출신 청년이 창업한 한 기업은 AI를 기반으로 온실 안을 자율주행하면서 작물의 길이나 열매의 색깔, 크기, 익은 정도 등 생육 상태를 자동으로 모니터링하는 농작업 로봇을 개발했다. 자동 모니터링을 통해 축적된 데이터는 온실 상태를 진단하고 현재 상태에서 필요한 농작업을 실시간으로 추천하는 온실 관리 통합 솔루션으로 보낸다. 이 청년 기업은 AI 기반 첨단 농업 서비스를 바탕으로 약 91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농촌도 더 이상 청년세대가 기피하는 열악한 환경이 아니다. 빈집, 창고, 폐교 등을 그대로 이용해 추억과 감성을 살린 카페나 양조장(브루어리)으로 재탄생되고 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로컬푸드, 경관 등 지역의 고유한 자연·문화 자원과 융합시켜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변신시키고 침체된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는 청년들도 늘고 있다.

대기업 출신의 한 청년은 회사를 나와 부여의 백마강 주변에 베이킹 카페를 창업했다. 지역 농가와 직거래를 통해 우수한 품질의 로컬푸드를 공급받아 케이크를 개발·판매하고 카페 한켠에서 베이킹 클래스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농가와 지역민들에게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이처럼 농업·농촌은 청년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잠재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혁신의 주체는 다름 아닌 청년들이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농식품부는 지난 1월 범정부 개혁 TF의 출범을 계기로 '청년정책 대전환'을 주요 어젠다로 삼아 청년 중심의 새로운 농정을 준비해 왔다.

약 7개월간 2030자문단을 비롯한 다양한 청년 농업인과 청년 기업인을 직접 만나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바탕으로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농업·농촌 청년정책의 새로운 장을 열기 위해 8월 5일 청년과 함께 만든 '농업·농촌 청년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먼저, 앞으로의 농업 정책은 청년들에게 농업 생산 활동만을 강요하지 않는다. 기존 농업 생산 중심에서 식품·외식, 스마트팜 기자재·서비스와 같은 농업 전후방 분야로 확대하고 청년들이 첨단 기술 기반의 신산업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둘째, 청년 창업을 막는 규제를 과감하게 뿌리 뽑는다. 청년이 다양한 융·복합 사업을 시도할 수 있도록 제도를 확대하고 새로운 농촌창업 기회를 제공한다. 또 영농정착지원금을 받은 청년 농업인은 의무영농기간 동안 가공체험 사업을 할 때 외부에서 조달한 농산물 활용이 불가했으나 이제 허용된다.

셋째, 정책 과정에서 청년의 주도적 역할을 키운다. '농업·농촌정책 청년 영향평가'(가칭) 제도를 도입해 정책 기획 단계에서부터 청년이 직접 참여해 정책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농식품부 예산안 편성 지표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평가체계를 올해 안에 구체화할 계획이다.

농업·농촌에서 청년이 꿈과 희망을 찾으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청년 농업인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양한 분야의 청년 농업인과 전후방 청년 기업이 만나 서로에게 공급처와 수요처가 되는 창의적인 비즈니스 생태계가 필요하다.

믿을 만한 농산물 원료를 찾는 청년 기업에는 정직한 청년 농업인이 비즈니스 파트너가 될 수 있다. AI 기반 농업 솔루션을 개발한 청년 기업게는 스마트팜을 운영하는 청년 농업인이 우수 고객이 될 것이다. 또 다양한 로컬 기반 공동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농촌 청년 기업은 농촌 청년들의 생활·교육·문화적 수요를 채워주며 청년들을 신뢰로 끈끈하게 이어줄 수 있다. 이러한 청년 농업인과 농업 전후방 및 농촌 청년 기업인이 모이면 상생발전 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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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농촌 청년정책 추진방향

청년 농정의 폭을 청년농에서 청년 전후방 기업, 농촌 비즈니스까지 확대하는 이번 대책이 농업·농촌을 둘러싼 청년 기반을 튼튼하게 다지는 계기로 만들 것이다. 나아가 지역 소멸을 극복하고 전 국토, 전 세대가 균형 있게 발전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 믿는다.

청년들과 함께 만든 '농업·농촌 청년정책'은 청년들을 새로운 삶으로 안내하는 초대장과 같다. 우리 농업이 새로운 희망으로 다시 살아나고 쉼과 여유로움으로 누구나 찾아오는 농촌으로 안내할 것이다. 급변하는 환경 변화 속에서 농업·농촌이 경쟁력을 갖고 청년들의 힘찬 도전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노력하겠다.

박범수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필자〉1971년 전남 장성 출신으로, 광주대동고와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 A&M 대학에서 농업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39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해 농식품부 유통소비정책관, 정책기획관, 축산정책국장, 차관보와 대통령비서실 농해수비서관 등 농식품 분야 핵심 업무를 두루 맡았다. 풍부한 농정 경험을 바탕으로 재해, 수급 안정, 농촌 고령화 등 구조적인 당면 현안을 해결해 나갈 뿐 아니라, 스마트농업, 푸드테크와 같은 새로운 기술과의 융합을 강조하며 우리 농업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뛰어난 업무 추진력으로 솔선수범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일이며, 이론적 지식과 현장의 목소리를 잘 조화시킴으로써 직원들은 물론, 대외적으로도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