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생성형 인공지능(AI) 발전은 AI에 대한 오랜 기대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대표 서비스인 '챗GPT' 이용자 수가 18억명을 돌파하는 등 AI 혁명이 생활 밀착형 서비스로 다가왔다.
그간 수많은 데이터를 축적해온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통신사업자들은 고품질 서비스 구현에 필요한 차세대 이동통신(6G) 기술과, 6G 시대 네트워크 장비 핵심기술인 '오픈랜(Open RAN)' 기술 선점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국이 오픈랜 기술 경쟁에 뛰어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픈랜은 5G 기지국 장비(RAN)를 구성하는 수많은 장치들을 단일 기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기업의 장치를 상호 연동해 경쟁을 활성화하고 비용을 절감한다는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했다.
서로 규격이 다른 다양한 기업 장치를 연동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소프트웨어(SW)와 AI 기술을 활용하게 됐는데, 이는 차세대 6G 기술이 요구하는 네트워크 장비 기능과 정확히 일치한다. 5G 초기에 성능·효율성 문제로 주목받지 못했던 오픈랜은 6G와 AI 시대 밑그림이 점점 구체화되면서 '차세대 네트워크 장비의 진화 방향'으로 각광받게 됐다.
기지국 장비 시장의 전통적 강자로 군림하던 에릭슨과 노키아가 오픈랜으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퀄컴, 인텔, 엔비디아 등 AI반도체 기업들까지 시장에 뛰어들었다.
오픈랜이 차세대 네트워크 장비 '게임체인저'로 부상하면서 주요국은 경제안보 강화와 시장 선점을 위한 대규모 연구개발(R&D)과 인프라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및 과학법'을 통해 차세대 네트워크 기술 개발에 약 2조원의 기금을 투입하고 통신 기술과 클라우드·AI·디지털 트윈 등 신기술 결합을 위한 대규모 연구시험망을 구축했다. 유럽은 오픈랜 가상화·지능화 기술 발전을 위한 오픈소스 SW 생태계 구축에 매진하고 있다. 통신장비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졌던 일본도 5G 구축 과정에서 오픈랜을 전면도입하는 데 성공하며 글로벌 기술패권경쟁의 한 축으로 부상했다.
우리나라도 정부와 민간을 불문하고 오픈랜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30여개 기업과 기관이 합심해 출범한 오픈랜 인더스트리 얼라이언스(ORIA)는 국내·외 오픈랜 기업 간 생태계 조성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오픈랜 표준화 국제단체(O-RAN 얼라이언스) 정기 기술총회와 '오픈랜 심포지엄'을 개최해 전세계 산·학·연 전문가들과 함께 오픈랜 기술·산업의 발전 방안을 논의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역시 차세대 통신을 12대 국가전략기술 중 하나로 선정하고, 오픈랜 핵심기술 개발, 국제공인시험소 구축, 실증사업 등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다만 6G 시대 오픈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기존 네트워크 기술 R&D와 차별화된 접근법이 요구된다. 오픈랜과 6G는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AI, 디지털트윈 등 다양한 분야 신기술과의 융합이 필수적인 만큼, 글로벌 선도국가와 협력을 통해 이동통신과 AI·컴퓨팅 기술을 겸비한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수만대 컴퓨터를 연결하는 초대형 실험실과 도시 단위의 디지털트윈 테스트베드를 구축한 미국의 사례처럼, 우리나라도 개별 대학·연구소 단위의 연구 인프라뿐 아니라 대규모 통신용 AI-컴퓨팅 연구환경 구축이 절실하다.
우리나라는 삼성전자라는 글로벌 장비 제조사와, 뛰어난 이동통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AI와 소프트웨어 기술까지 아우르는 오픈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6G 네트워크 시장에서의 입지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오픈랜 기술 수준은 선도국(미국) 대비 80%며, 기술격차는 3년에 달한다. 규모의 경제와 경로 의존성이 크게 작용하는 네트워크 장비 시장에서 3년의 기술격차는 수십% 점유율 격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오픈랜 경쟁력을 조속히 확보해, 차세대 네트워크와 AI 선도국으로 도약하기를 기대한다.
김동구 ORIA 운영위원장·연세대 교수 dkkim@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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