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개념 모호…소모적 분쟁
하청사용자 경영권·독립성 침해
노동3권·사용자 재산권 균형 유지
합리적 근로환경 조성 고민해야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이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 주도로 통과됐다.
정부는 물론 재계는 즉각 “유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개정안은 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원청 책임 강화, 쟁의행위 범위 확대,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 제한 등 내용을 담고 있다. 경제단체와 정부는 21대 국회에서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최종 폐기된 법안보다 내용이 강화됐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앞서 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한국경제인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18일 “노조법 개정안의 입법 중단을 강력히 요청한다”며 경제6단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법 제2조와 제3조에 대한 개정안이 골자다. 2014년 쌍용자동차 파업 노조원에 대해 법원이 47억원 손해배상을 판결하자, 시민이 월급봉투를 상징하는 노란봉투에 성금을 담아 전달하며 노란봉투법으로 회자됐다.
야당 주도로 통과된 개정안의 핵심은 사용자와 노동쟁의 범위를 확대하고, 노조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는 것이다.
재계는 노란봉투법이 △헌법상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위배하고 △도급제를 유명무실화(형해화)했으며 △가해자 보호법안 △경영권 침해 △파업 만능주의 확산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모호한 '사용자 개념'…불특정다수 형사범 양산 우려
재계와 정부는 노란봉투법이 사용자 개념을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를 넘어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확대한 것이 모호하다고 주장했다. 판단 기준이 모호해 산업현장에서 혼란을 초래할 수 있어 불특정 다수의 형사범을 양산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재계는 또 개정안에서 사용자 개념을 모호하게 규정해 수많은 원청-하청 관계로 이뤄진 산업 현장에서 교섭의무, 교섭노조 단일화 등에 대해 소모적 분쟁을 야기할 수 있어 노사관계 질서가 훼손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노조법상 사용자는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해야 할 의무가 있다. 위반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또, 다수 경제주체를 사전에 특정하기 어렵게 되면서 이들이 노조법상 사용자 의무위반에 따른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점도 헌법상 죄형법정주의와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재계는 이같은 사용자 개념 확대로 하청근로자와 직접 계약관계가 아닌 원청사용자와 하청노조간 단체교섭이 가능해져 도급제도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용 유연성을 확보해 경기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도급제를 활용하는 데 원·하청간 교섭이 허용되면 인력 운영 비효율성이 높아져 기업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하청사용자의 경영권과 독립성 침해 우려도 제기했다. 원청사용자가 하청근로자와 임금, 근로시간, 작업내용 등 근로조건에 대해 교섭하는 과정에서 구체 의견을 제시할 경우에 이를 하청근로자에 대한 업무지시나 인사권 행사로 볼 가능성이 생겨 불법파견에 해당할 위험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이는 도급 활용 부담으로 이어져 대기업 외주 업무를 수주하는 중소기업의 활동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원청사용자가 하청근로자에게 업무지시, 근태관리 등 인사권을 행사하면 이를 실질적인 파견계약관계로 간주한 사례가 있다.
◇경영상 결단 막고 파업 일상화 초래
현행법은 노동쟁의 대상을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으로 한정했다.
반면, 개정안은 '근로조건의 결정'을 '근로조건'이란 문구로 변경해 노동쟁의 대상을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으로 확대함으로써 정당한 쟁의행위 범위를 넓히도록 했다.
이는 임금인상이나 단체협약 체결 등 '이익분쟁'은 물론 이미 확정된 권리에 대한 해석이나 실현에 대한 분쟁 등 소위 '권리분쟁'까지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한 것이다.
재계는 이렇게 되면 구조조정, 사업조직 통폐합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경영상 조치도 민·형사상 책임이 면제되는 정당한 파업 대상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영악화를 막기 위한 경영상 결정에 대해 노사간 이견이 큰 경우가 많은 데 개정안 구조에서는 파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져 사용자 고유의 경영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해고자 복직, 단체협약 미이행 등 사법 구제절차로 해결할 권리분쟁 사안까지 파업으로 해결하는 시도가 늘어나 파업의 일상화가 초래될 수 있다는 지적도 크다.
국제노동기구(ILO) 통계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한국의 임금근로자 1000명당 파업으로 인한 연평균 근로손실일수는 38.8일로 나타났다. 이는 일본(0.2일)에 비해 194.0배 높은 수치다.
재계는 현행 노조 파업권이 사용자 방어권보다 폭넓게 보장되고 있는 데 노동쟁의 범위까지 커지면 노사간 힘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대립적 노사관계가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해배상청구 무력화
개정안은 기존 노동조합법 제3조에 규정된 내용을 제3조 제1항에 포함시키고 노조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는 내용을 제2항에 신설했다. 이는 노동계가 모든 행위자 각각에 대해 과다한 배상책임을 부과하는 것을 막아줄 필요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위법한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산정할 때 쟁의행위에 가담한 조합원의 개별 기여도를 고려해 책임 범위를 정하도록 규정했다.
반면, 민법 제760조에서 개별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집단 불법행위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연대책임을 인정하고 있어 상충된다.
경제계는 이에 대해 “가해자를 보호하는 법안”이라며 “파업 손실에 대한 개별 조합원의 기여도를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유일한 대응수단인 손해배상청구마저 무력화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노동3권과 재산권 간 균형부터 고민해야”
전문가들은 개정안 자체의 통과 여부보다는 근로자의 노동 3권과 사용자 재산권 간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근로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IMF를 겪으면서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하청-재하청 구조가 형성되면서 노동 구조가 과거 경제 호황기와 달라진 만큼 작은 노조가 원청기업 상대로 노동권을 행사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정안에 따라 사용자 범위가 확대되면 사용자 범위에 포함된 사람은 기본권이 제한될 수 있고 노동자는 이익이 존재하므로 사용자에게 보장된 계약의 자유와 근로자에게 보장된 노동3권의 규범적 비중이 평가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김나래 한국법학원 연구위원은 “노동자의 합법적 쟁의행위 범위가 좁으므로 기업이 손해배상청구 소송으로 노동활동을 압박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반면 노란봉투법은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불가능하도록 해 사용자 재산권의 본질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고 기업들이 파업 노동자에 막대한 배상액을 청구한 사례가 있는 만큼 사용자 재산권과 노동 3권간 균형을 유지하는 환경 조성이 더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