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뜨거운 화두는 단연코 인공지능(AI)이다. 2022년 오픈AI가 '챗GPT'를 대중에게 선보인 이후, 세계 여러 나라 정부와 기업들이 앞다투어 생성형 AI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글로벌 AI 전쟁'이라 표현해도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치열한 경쟁 속에 생성형 AI 기술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지난 2월 오픈AI가 공개한 동영상 생성 AI '소라(Sora)'가 매우 사실적인 영상 제작물을 선보이자, 기존 영상산업이 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한 생성형 AI가 기후변화 등 글로벌 난제 해결, 산업영역에서의 생산성 향상 등에 응용되기 시작하면서 디지털 전환 수준, 속도, 범위도 전례없이 증대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빅테크 주도의 생성형 AI 개발은 미국 외 국가에게 미래 경쟁력이나 국가 안보와 관련한 우려를 야기하고 있다. 자체의 생성형 AI를 보유하지 못하면 AI 인프라를 다른 나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인터넷과 빅데이터 기반의 생성형 AI는 초국경적인 특성을 지닌다. 때문에 이미 막대한 자본력과 기술, 글로벌 빅테크의 영향력이 생성형 AI 분야에 그대로 투사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각 국의 AI 관련 전후방 산업이 글로벌 빅테크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AI 보유국과의 기술 격차가 국가 간 경제적 격차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때문에 글로벌 사회에서는 'AI 주권(소버린 AI)'에 대한 관심이 뜨거울 수밖에 없다. 'AI 주권'은 국가가 자국의 AI 관련 기술개발과 활용을 통해 독자적 인공지능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자국 초거대 언어모델 등 기술 개발 역량과 이를 서비스화 할 수 있는 플랫폼, 반도체, 네트워크 등 전후방 산업을 모두 보유한 몇 안 되는 나라로 'AI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현재 위치를 유지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글로벌 빅테크는 막강한 자본력에 기초한 AI 기술 격차를 지속적으로 유지·확대하고 있고, 프랑스, 일본, 인도, 사우디, 싱가포르 등 각 국은 정부 지원 아래 자체 언어모델 개발과 컴퓨팅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 소위 '넛크래커(Nutcracker)'가 AI 분야에서 현실화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우리나라가 'AI 주권'을 확보하고, 글로벌 AI 전쟁을 선도하려면 공공부문부터 민간의 첨단 기술을 수용하기 위한 민관협업을 활성화해야한다. 우리 기업의 초기 시장 수요를 공공에서 메꿔줘 선순환 생태계를 이어나갈 수 있게 마중물 역할을 해야한다. 또 데이터의 유통·활용을 촉진하기 위한 법제도 개선에도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2023년 4월에 마련된 '디지털플랫폼정부 실현계획'은 공공부문을 AI·데이터 시대에 맞게 혁신하기 위한 범국가적 전략이다. 이 계획은 우리나라의 'AI 주권' 확보에 기여할 수 있도록 민간의 첨단기술 도입을 위한 민관협력과 공공부문의 데이터 개방 및 융합을 활성화하기 위한 세부 실행 방안을 담고 있다.
특히, 계획을 토대로 공공서비스의 효율성을 높임과 동시에 자체 거대언어모델(LLM) 보유 등 초거대 AI 관련 역량 있는 기업들에게 초기 시장을 제공하기 위해 '공공부문 초거대 AI 기반 서비스 지원사업'을 지난해부터 이어오고 있다. 그 결과 복지, 재난, 안전 등과 관련해 공공부문에 특화된 70여건의 활용사례를 발굴했다.
대표적으로 도시철도 작업자들이 사용하는 단말기에 생성형 대화 AI 기술을 적용, 현장에서 바로 안전 규정과 행동 수칙을 인지하고 위기상황에서 신속·정확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올해를 '정부 전용 초거대 AI' 구현의 원년으로 삼아, 단계별로 실현계획을 이행해 나가는 중이다. 지난 4월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는 공무원들이 초거대 AI를 업무에 도입하는데 있어서 중요하게 검토해야할 사항 등을 담은 '공공부문 초거대 AI 도입·활용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했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될 '정부 전용 초거대 AI' 기반 구축을 위해 행정안전부 등 유관부처와 중장기 로드맵 수립 및 이를 위한 학습 데이터 선정 등도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국내 AI 산업의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 개방과 융합을 저해하는 정부 시스템 간의 칸막이를 해소하는 것이다. 양질의 데이터는 AI의 성능을 높이는데 필수적이지만 이를 개별 민간기업에서 독자적으로 확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법·제도적 개선을 통해 공공 데이터가 AI 학습에 활용될 수 있도록 적극 개방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국민에게 선제적이고 맞춤형의 정부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AI 학습과정에서의 개인정보 활용과 관련한 다양한 이슈들을 조속히 정리해야 한다. 데이터 안심구역, 개인정보 활용 안심구역, 규제 샌드박스 등 개인정보의 안전환 활용을 위한 다양한 제도가 마련됐지만 여전히 개인정보 규제에 관한 불확실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애플이 오픈AI와 협력하기로 했듯이 AI 분야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기업 간 협력이 활발해지고 있는 상황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AI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국내기업과 AI 기술발전을 선도하고 있는 글로벌 빅테크의 적절한 협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각국 정부가 AI 산업을 육성, 추격해오는 상황에서 우리가 AI 관련 기술발전, 공급망 관리, 인재육성 등을 자체적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중국에는 쫒기고, 일본은 추월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제기된 '샌드위치 문제'를 극복한 바 있다. '글로벌 AI 전쟁'에서도 명실상부한 AI 선도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공공부문부터 혁신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장
〈필자 소개〉고진 위원장은
1961년생, 서울대 전자공학과 학사, 미국 시라큐스대학교 대학원 컴퓨터공학과 석·박사 후 ㈜바로비젼을 창업해 순수 국내 기술로 세계최초 모바일 VOD 상용서비스를 실현했다. 이후 국가과학기술심의회 ICT융합전문위원회 위원장,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 한국모바일산업연합회장, 한국메타버스산업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디지털플랫폼정부 태스크포스(TF) 팀장을 거쳐, 2022년 9월 출범한 대통령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디지털플랫폼정부 구현을 위해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