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Image
주영환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에너지AI·계산과학실 책임연구원

얼마 전 미국에서 개최된 에너지, 화학 관련 학회를 다녀왔는데 미국 화학산업계의 관심은 온통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에 맞춰져 있었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화학산업에서 사용하는 고온 에너지 다소비 설비들의 열원을 전기에너지로 대체하는 연구를 활발하게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비용 측면을 차치하고서라도 지구 온난화를 막는 것이 미국에서도 중요한 이슈이긴 한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기를 이용해 화학산업에 필요한 고온의 열에너지를 공급하는 방법이 과연 타당한 방법일까?

전기에너지를 열에너지로 전환하면 전력 손실도 크고 전력 소비량이 매우 커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세금이나 보조금에서의 이익을 감안하더라도 유틸리티 비용이 크게 상승할 것이다.

실제로 여러 종류의 에너지원이 가지고 있는 가치(일을 할 수 있는 능력)를 비교하기 위해 '엑서지(Exergy)'라는 기법을 적용해 볼 수 있다.

엑서지 이론에서는 동일한 열량을 가지고 있는 열에너지라도 고온일수록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보며, 특히 전기에너지는 일로 100% 전환할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에너지원으로 보기 때문에 전기에너지를 열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은 엑서지 손실이 큰 비효율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럼 고온, 다량의 열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화학산업의 탈탄소화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가열로의 연료를 수소로 대체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수소는 연소 시 이산화탄소 배출을 하지 않으면서 연료로서도 발열량이 매우 높은 물질 중의 하나이므로, 버너 등 관련 설비의 개발 및 질소산화물(NOx) 저감 방안 등의 연구와 함께 연료로서의 활용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둘째, 연소 후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 성능 및 경제성을 향상시켜 화학산업 내 보급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산화탄소 농도에 관계없이 포집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설치 및 운영 비용을 현실적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면 산업체에서 화석연료를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이산화탄소 배출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바이오연료 활용의 확대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바이오연료는 그 자체로 이산화탄소를 이미 포집하고 있는 상태이므로 석탄이나 중유 대신 산업 현장에서 사용해도 넷제로(Net Zero)를 달성할 수 있으며 실제로 일부 업체에서는 이미 도입을 검토 중이다.

마지막으로, 기존 공정을 개조·최적화해 에너지 효율을 더 높이고 이산화탄소 배출 양을 줄이는 방안도 필요하다. 핀치(Pinch) 분석, 엑서지 분석, 병목점 해소(Debottlenecking) 분석 등 기존 에너지 효율 분석 기법 외에도 최근 주목받고 있는 다양한 AI 기반 데이터 분석 기법을 활용한다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에너지 낭비 요인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화학산업계가 사용하는 엄청난 양의 열에너지와 그로 인해 배출되고 있는 이산화탄소를 고려한다면 화학산업의 탈탄소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이 됐다.

신재생 전기는 그 자체로서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상기 언급한 대안들을 참고해 화학산업 전체를 지속가능한 형태로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길 기대해 본다.

주영환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에너지AI·계산과학실 책임연구원 yhchu@kier.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