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의료기기 국가가 직접 수급 관리...'필수 의료기기 지정제' 추진

반드시 필요한 의료기기를 국가가 수급 관리하는 '필수 의료기기 지정제도'가 도입된다. 팬데믹, 국가간 분쟁 등으로 인한 공급망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필수 의료기기 지정 시 국산화 전환이 가능한 제품을 선별, 제도적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7일 정부기관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필수 의료기기 지정 제도 도입을 위한 선행 검토에 들어갔다.

필수 의료기기 지정은 병원에서 환자 진료·치료에 반드시 필요한 의료기기를 필수 항목으로 지정, 국가가 수급을 관리하는 제도다. 현재 정부는 의약품에 유사한 제도를 적용, 필수 제품을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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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식약처는 그동안 의약품 못지 않게 의료기기 역시 환자 생명을 지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체계적인 수급관리가 안됐다고 판단해 지정 제도를 검토 중이다.

실제 정부는 지난해 말 기준 448개 품목을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해 꾸준히 공급 상황을 모니터링한 뒤 수급 불안정 요소가 확인되면 선제적으로 물량을 확보·보급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기기는 이 같은 관리 체계가 없다. 이로 인해 지난 2019년 미국 의료기기 업체 고어가 한국에 인공혈관 등 심장수술 치료에 필요한 재료 공급을 중단하면서 의료 현장에 큰 혼란을 야기한 바 있다. 상대적으로 수가가 낮은 우리나라 의료 체계에서 글로벌 제약·의료기기 기업이 수익성을 이유로 제품 판매를 중단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가 떠안게 되는 것이다.

식약처는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는 점 역시 필수 의료기기 지정제도 검토가 필요한 이유로 꼽는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과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공급망 불확실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국내 대형병원의 외산 의료기기 비중이 98%에 육박한 상황에서 공급망이 끊어질 경우 당장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다양한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의료기기 수급 관리 필요성이 커진다”면서 “환자 진료나 치료, 수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필수 의료기기 범위와 지정 요건 등을 검토할 계획이며, 필요시 내년에 지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의료기기 업계와 전문가들은 필수 의료기기 지정제도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국산화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 단계에서 필수 의료기기를 지정할 경우 대부분 외산 제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또 다시 잠재적인 수급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는 만큼 국산화 가능 분야는 적극 투자해 국내 의료기기 산업의 진흥까지 함께 꾀해야 한다는 접근이다. .

이선희 가천대 간호대학장은 “필수 의료기기로 관리할 경우 수급 불확실성을 줄이 수 있는데, 국산화가 가능한 의료기기에 한해 해외 의존도를 낮출 방안을 함께 검토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