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경쟁이 하드웨어를 넘어 플랫폼으로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 TV제조사는 수십년간 고화질·대화면을 주력으로 각축전을 펼쳤지만 현재는 TV플랫폼 우위를 선점하려는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종전과 같은 TV 판매에 따른 매출· 이익 확대 뿐만 아니라 광고와 콘텐츠를 통한 새로운 수익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초대형·고화질…현재 키워드는 '플랫폼'
8K 해상도, 90형대 이상 초대형 스크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마이크로 LED, 프리미엄 LCD…. 올초 열린 CES 2024에서 펼쳐진 TV 신제품 경쟁 키워드다.
하지만, CES2024에선 TV 경쟁이 하드웨어에서 플랫폼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도 드러났다.
삼성전자·LG전자, 일본 소니, 중국의 TCL·하이센스 등 TV 제조사는 약속이나 한 듯 플랫폼을 소개했다.
TV 플랫폼에서는 하드웨어 중심 수익 구조를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로 다변화, 지속적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스마트TV를 시청하는 사용자 개인이 어떤 콘텐츠를 좋아하고, 어떤 시간에 시청하는지 등 다양한 시청 데이터를 분석하면 수익 기반이 된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시청자에게 스포츠 경기 티켓이나 스포츠 용품에 대한 타깃 광고를 노출하는 게 가능하다. 시청자가 좋아할 만한 추천 콘텐츠를 TV 홈 화면에 우선 노출하고, 시청 관련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 리모컨 버튼에 별도 상품 판매 등 기능도 연동할 수 있다.
현재 TV 플랫폼 진영은 전통적 플랫폼 기업, TV 제조사, 전통 콘텐츠 기업으로 구성돼 성역없이 경쟁하고 있다. 여러 하드웨어에 플랫폼을 공급하는 개방형 플랫폼과 특정 TV에만 탑재되는 폐쇄형 플랫폼도 있다.
TV 플랫폼은 화웨이 '하모니(Harmony)', 파나소닉 '파이어폭스(Firefox)'를 제외하면 모두 개방형이다.
안드로이드 기반 구글TV는 별도의 특정 하드웨어 의존없이 다양한 TV 제조사에 의해 채택되고 있다. 아마존의 '파이어TV(FireTV)'도 개방형을 지향한다.
로쿠(Roku)는 비교적 저사양 TV에서도 운용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유럽 시장을 겨냥해 올해 새롭게 등장한 '타이탄(Titan)' 플랫폼은 디즈니, 로쿠, 라쿠텐 TV, KKR 등 유럽과 미국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투자 부문 업계 임원들이 설립했다.
콘텐츠 사업자 컴캐스트의 '주모(Xumo)', 플랫폼 기업 엑스페리의 '티보(TiVo)', TV 제조사 하이센스 의 '비다(Vidaa)'도 있다.
폐쇄형에서 개방형으로 전환한 플랫폼도 있다. 삼성전자 '타이젠(Tizen)'과 LG전자 '웹OS(webOS)'은 당초 자사 TV에만 탑재됐다가 개방형으로 전환했다. 비지오의 '캐스트OS(CastOS)'도 폐쇄형에서 개방형으로 바뀌며 플랫폼 전쟁에 뛰어들었다.
◇'멀티 플랫폼' 채택하는 TV 제조사
국내외 TV 제조사는 국가별로 플랫폼을 달리 적용하는 전략도 구사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과 거래 폭을 넓히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고, 사용자에게도 선택권을 넓게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결과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TV 제조사들은 국가별로 주요 TV 플랫폼 공급사를 달리 적용하는 정책을 펼쳤다.
글로벌 TV 시장 점유율이 높은 삼성전자, LG전자, 소니는 각각 타이젠, 웹OS, 안드로이드를 글로벌 시장에 걸쳐 일괄 적용했다.
반면, 중국·일본 TV 제조사는 국가별로 다른 플랫폼을 적용했다. 특히 다양한 유·무료 콘텐츠 구독 수요가 높은 북미에서 다양한 플랫폼을 적용해 현지 시청자 맞춤 전략을 펼쳤다.
중국 하이센스는 중국에서는 안드로이드 단일 플랫폼을 적용했지만 북미에서는 안드로이드, 로쿠, 파이어TV, 비다, 주모를 모두 적용했다. 서유럽에서는 안드로이드, 로쿠, 비다를 채택했다.
경쟁사인 TCL도 유사한 전략을 펼쳤다. 중국에서는 안드로이드 플랫폼만 적용했지만 주 공략시장인 북미에서는 로쿠, 안드로이드, 파이어TV를 채택했다. 서유럽에서는 안드로이드, 파이어TV, 로쿠, 리눅스를 적용했다.
일본 샤프는 북미에서 안드로이드와 로쿠를, 서유럽에서는 안드로이드, 로쿠, 티보를 각각 채택했다.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TV 플랫폼 시장에서 안드로이드 42.7%, 삼성 타이젠 19.8%, LG 웹OS 11.6%를 기록했다.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주로 사용하는 중국 TV 출하량 증가 영향으로 국내 제조사 점유율이 2022년 대비 소폭 하락했다.
◇월마트의 비지오 인수, 이커머스 전쟁 신구도 촉발
2월 미국 대형 유통사인 월마트가 스마트TV 기업 비지오를 23억달러(약 3조원)에 인수한 것은 TV 플랫폼 기반의 광고 수익 경쟁이 북미에서 얼마나 치열한 지 보여준 사례다.
비지오는 TV 플랫폼 '스마트캐스트(SmartCast)' 운용체계(OS)를 보유했다. 동시에 자체 브랜드 TV 제품군도 갖췄다. 월마트는 북미에서 로쿠 플랫폼을 탑재한 자체 브랜드의 초저가 TV '온(Onn)'을 판매하고 있다.
월마트는 비지오를 인수함에 따라 '오프라인 유통 공룡'에서 새로운 '디지털 이커머스 플랫폼 사업자'로 변신을 시도하게 됐다. 비지오의 자체 TV 플랫폼을 이용해 시청자 데이터를 더 많이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른 제품 판매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