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글로벌 3위 통신사 텔리포니카 지배권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텔리포니카 지분을 사우디 통신사 STC가 매입한 사실이 드러나자, 스페인 정부는 부랴부랴 민영화 후 17년만에 텔리포니카 지분을 재매입을 추진하고 있다. 통신사 수익성 악화가 가져다줄 부정적 사례의 교훈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스페인 국영지주회사(SEPI)는 26일(현지시간) 텔리포니카 지분 3%를 인수했다고 공시했다.
스페인 정부가 텔레포니카 지분을 인수한 것은 1997년 텔레포니카가 완전 민영화된 이후 처음이다. 앞서 지난해 하반기 사우디텔레콤(STC)은 텔레포니카의 9.9% 지분을 21억 유로(23억 달러)에 인수했다고 기습적으로 공시했다. 9.9%는 완전 분산구조인 텔리포니카 지배구조상 지배권을 행사하긴 어렵지만, 최대 주주 지분이다.
스페인 정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난해말 SEPI를 통해 텔리포니카 지분을 10%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스페인에 대한 텔리포니카의 전략적 역량과 본질적인 중요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3% 인수는 그 출발선인 것이다.
텔리포니카는 스페인 국적이지만, 스페인과 유럽, 중남미 등에서 차이나모바일과 보다폰에 이어 세계3위 가입자규모를 자랑하는 초거대 통신사다. 사우디 PIF 국부펀드가 대주주인 STC는 텔리포니카를 통해 글로벌 통신시장 교두보로 삼으려했다는 분석이다.
텔리포니카는 지난해 매출이 성장했지만, 8억 9200만 유로 적자를 기록했다. 인프라투자와 경쟁 심화 속, 저가형 요금제 위주 시장전략에 금리인상이 겹치며 수익성 위기를 불러왔다. 텔리포니카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스페인에서 2026년까지 전체 직원 1만6500명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3400명 일자리를 줄이기로 했다.
텔리포니카 사례는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 교훈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수익성이 악화된 통신사가 초국적 자본의 표적이 된 이후에야 국가 기간서비스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정부가 뒤늦게 재 국유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투입하는 방대한 공적자금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게 됐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텔리포니카와 같은 사태를 겪지 않으려면 국민혜택을 위한 통신비 인하 정책도 필요하지만, 정부가 통신 산업의 성장 전략과 수익성 확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성 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