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166〉저성장의 늪, 유연하고 관대하고 자유롭게 극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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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모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중진국의 함정이라는 말이 있다. 개발도상국이 중진국 단계에서 성장동력 부족으로 선진국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경제성장이 둔화되거나 중진국에 머무르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실제 많은 나라들이 이 중진국의 함정을 넘지 못하고 주저 앉은 경우가 많다. 과거 우리나라보다 잘 살았던 필리핀이나, 브라질, 러시아, 멕시코, 태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이 좋은 예다. 우리나라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코로나19 등 반복되는 외부의 경제적 충격을 잘 극복한데 힘입어 2019년 고소득 국가로 발돋움하기도 했다.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려면 다른 나라의 정책을 그대로 모방하는 게 아니라 자기나라가 처한 고유의 문제점들을 내부적 상황에 맞게 해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범용적인 모범답안이 존재하지 않으며, 이것이 많은 개도국들이 중진국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조업 수출과 인프라 구축, 그리고 무엇보다 기술개발과 인적자본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장기적인 성장의 토대를 닦은 것이 유효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방정식에 취해 있는 동안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으로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에 놓여 있는데, 인구는 줄어들고 있는 이중고를 겪고 있으며 반도체를 넘어서는 차세대 먹거리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베이비붐과 엄청난 교육열에 힘입어 중진국의 함정을 벗어날 수 있었지만,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코리언 패러독스를 기존의 성공방정식으로 풀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더욱이 안타깝게도 우리나라가 선진국과 다른 압축성장을 이루었기에 벤치마킹할 나라도 마땅치 않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 스스로 현실을 진단하고 우리 상황에 맞는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 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우선 다음과 같은 굵직한 문제들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

첫째, 유연하고 과감해야 한다. 경직된 시스템을 유지한 채 코리언 패러독스를 극복할 수는 없다. 몸이 유연한 고양이가 좁은 구멍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처럼 필요하다면 기존의 질서를 흔드는 과감함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 동안 주먹구구식으로 맨 땅에 헤딩하는 것을 반성하면서 모든 것을 체계화하기 위해 애써왔다. 하지만 이제 체계적인 시스템이 변화를 저해하고 있는 모순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 최근 만들어진 법과 제도들은 꼼꼼하고 자세하게 모든 상황을 상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는 법이다. 요즘 만들어지는 법이나 제도보다 오히려 1970년대 만들어진 법과 제도들이 더 과감하다. 자세함과 절차적 공정성에 매달려 큰 손해를 보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둘째, 때로는 관대해지고 너그러워져야 한다. 잘못을 지적하고 고쳐잡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지적을 위한 지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목표한 성과를 다 이루지 못했다고 개인에 대한 비난과 힐난으로 일을 열심히 한 사람을 징계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 감사의 초점이 회계감사에서 정책감사로 확대되면서 감사가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는 경향도 있다. 가급적 실패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 하겠지만 우리는 늘 실패에서 더 많이 배운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비난보다는 개선이 더 중요하다.

셋째, 민간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얼마 전 앤트로픽의 최신 AI '클로드 3'가 멘사의 IQ 테스트 결과 101을 기록하였으며 몇 년 안에 사람의 지능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정부가 깃발을 들고 변화를 주도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 최소한 미래 먹거리를 결정하는 일은 민간이 주도할 수 있도록 하고 정부는 최소한으로 개입해야 한다.

전 세계에서 300년 이상 존속한 나라가 몇 개 없고 100년 기업이 얼마 안되는 이유는 그 만큼 변화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코리언 패러독스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성찰과 뼈를 깍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길은 유연하고 관대하고 자유로운 변화관리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안준모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joonmo@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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