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기업평가 기준 표준화
中企 특성 고려한 평가 못해
사회적책임·지속가능경영 측정
'동반성장지수' 활용 논의도
중소기업계가 상생금융지주 도입 논의를 본격화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긴축기조 장기화로 자금 조달비용이 급상승해 자본시장 의존도가 낮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운영자금 조달 부담이 가중된 이유다.
우리 중소기업의 경우 신용과 담보가 취약해 시중은행 문턱을 넘기 힘든 구조다. 한국은행과 정부 개입 정책금융에 대부분을 의존해 자금조달을 하고 있다. 정부 주도 정책금융 의존도가 높다는 의미다. 최근 고금리로 은행들이 많은 수익을 거두면서 상생금융 일환으로 일정 부분을 환원하고 있지만, 일회성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정책금융과 더불어 상생금융지주 도입을 통한 은행 등 민간 금융시장의 적극적인 중소기업 지원들이 파급적 측면이나 선순환적인 경제생태계 조성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부재한 中企 상생금융 시현 “맞춤형 평가제도 시급”
중소기업은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경제 성장을 견인하며 혁신을 주도하는 등 우리 경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2021년 기준 771만개까지 늘어나면서 양적 팽창을 거듭했다. 전체 기업에서 중소기업 비중은 99%에 육박하며, 종사자도 80% 이상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매출액에서도 대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우리 중소기업은 고금리에 따른 금융비용 상승과 경제 블록화로 인한 공급망 문제 등으로 채산성이 악화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소기업계는 금융애로를 해소하고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은행이 적극 가담하는 '상생금융'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상생금융은 쉽지 않다. 중소기업 대상 금융지원은 정책금융 주도로 이뤄지고 있으며, 은행권은 보조 역할을 하는 수준이다.
물론 은행들이 상생금융을 등한시한 것은 아니다. 이미 상생금융과 사회공헌활동이 활발하다. 다만 은행 상생금융은 취약차주, 소상공인, 금융소외계층 등이 대상이며, 사회공헌활동도 지역사회·공익, 학술·교육, 메세나 등 여러 분야다. 그러나 정작 중소기업 대상 상생금융 제도는 미흡한 상황이다.
이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상생금융제도 부재 영향이 크다. 상생금융지수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과 지역사회 발전, 환경 보호 등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고 지속 가능한 경영을 추구하는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를 말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 가능한 경영을 평가할 수 있고, 이런 노력이 금융시장 전반의 발전과 사회적 가치 창출 등에 기여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다만 국내은행은 기업평가 기준이 표준화, 정량화 되어 있어 개별 기업을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한다. 이런 표준화, 정량화 기법은 효율성이나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우수하나, 중소기업 특성을 고려한 평가가 이뤄지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이런 가운데 간접금융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은 코로나19 이후 대출규모 증가와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이자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2021년 2.98%였지만, 2022년에는 4.44%, 지난해는 5.34%로 상승하면서 2012년(5.66%) 이후 11년 만에 5%대에 도달했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 대출잔액은 크게 늘어 지난해 말 기준 1037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중소기업 대출잔액이 1000조원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소기업이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등 3高(고)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은행은 예대마진 증가로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거뒀다. 지난해 말 기준 5대 은행 총 영업이익은 44조3262억원이며, 이중 이자이익은 41조3878억원으로 집계됐다. 총 영업이익에서 이자이익 비중이 93.37%로 여전히 90%를 넘는다. 은행 횡재세 도입 논의가 점화된 배경이다.
◇中企 10명 중 6명 “상생금융 잘 모른다”
중소기업 대부분도 상생금융에 대해 모르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와 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가 발표한 '중소기업 상생금융지수 도입을 위한 의견조사'에 따르면 64.3%가 은행 중소기업 대상 상생금융을 '잘 모른다'고 답했다. '알고 있지만 이용하지 않거나 이용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23.3%, '알고 있고 이용했다'는 응답이 12.3%로 집계됐다.
상생금융을 알고 있지만 이용하지 못한 이유는 '일반 대출 대비 장점 없음'(42.9%), '까다로운 자격요건'(35.7%) 등 순이었다.
향후 상생금융지수 도입 시 중소기업 금융환경이 개선될 것이라는 응답은 45%를 차지했다. 응답 기업들은 상생금융제도 활성화를 위해 △은행의 적극적 제도 안내 △상생금융지수 평가 및 공시 △상생금융지수 법제화 및 강제이행 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응답 기업 57.3%는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 은행 역할로 '경제 활성화 및 기업 지원'이라고 답했다. 은행의 이자이익이 '경제 활성화 및 기업 지원에 사용됐을 것'이라고 생각한 응답은 15%에 그쳤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응답은 52%였다.
◇부재한 상생금융지수, '동반성장지수' 활용 논의
중소기업계에서는 부재한 상생금융지수 대안으로 '동반성장지수'를 은행권부터 중소기업까지 포함해 활용하는 안이 논의되고 있다. 동반성장지수는 동반성장위원회가 도입한 평가 지표로, 11개 업종 240여 대·중견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현재 금융위원회 은행경영실태 평가(CAMEL-IR 지수 평가)에 중소기업 의무대출 비율이 있지만, 상생금융을 시현하기엔 한계가 있다. 중소기업은 기술력이 있음에도 담보가 없거나 신용도가 낮을 경우 은행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동반위는 2013년에도 금융 동반성장지수 추진방안 연구를 거쳐 금융위 등에 건의한 바 있다. 다만 당시 은행권이 중소기업 신용대출 확대 등으로 재무건전성이 저하되고, 기존 은행경영평가 등과 중복되는 점을 우려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박치형 동반위 운영처장은 “은행의 경우 중소기업 의무대출 비율이 있지마, BIS비율 등을 고려하다 보니 신용도가 낮거나 담보가 없으면 아에 중소기업이 접근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면서 “금융을 뛰어넘어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 은행들이 중소기업들에 금융중개 기능만 하지 말고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은행이 컨설팅하고, 자금도 지원하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상생금융지수가 향후 시중은행 시범평가 이후 특수은행, 지방은행, 저축은행으로 확산하기 위해서는 경쟁평가보다는 자발적 참여유인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위해 은행 간 상대평가를 통해 경영부담을 주지 말고 은행 특성에 맞는 상생계획을 수립·실천하게 하고, 범금융권 상생금융 성과를 홍보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윤호 기자 yu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