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가 점포 재계약에 난항을 겪으며 달라진 위상을 체감하고 있다. 수요 감소, 내수 침체 등으로 유통 업황이 악화하면서 오프라인 유통 점포에 대한 재계약 선호도가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백화점·마트 부지를 오피스·레지던스 등으로 재개발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이지스자산운용은 최근 구로구청에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점 용도 변경 신청 의사를 전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지난 2022년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점을 인수한 건물 소유주다. 현재 상업 부지로 설정돼있는 백화점 시설을 오피스 시설로 변경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지스자산운용과 현대백화점은 내년 6월 만료되는 신도림 디큐브시티점 임대차 계약을 두고 협상을 벌이고 있다. 계약 종료를 1년 앞둔 시점에서 현대백화점은 재계약을 원하고 있지만 이지스자산운용은 난색을 표하는 상황이다.
현대백화점 입장에서 디큐브시티점은 지난해 매출 2306억원을 기록한 서울 서남부 알짜배기 점포다. 지하철 1·2호선이 교차하는 신도림역과 이어진다는 점에서 많은 유동 인구와 교통 입지가 장점으로 꼽힌다.
반면 이지스자산운용은 지난 2022년 인수 이후 꾸준히 백화점을 오피스 시설로 변경하겠다는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도림 인근 대형 사무실 수요가 높아 수익성 측면에서 낫다는 판단이다. 협상 결과에 따라 백화점 철수가 가능한 상황이다.
오는 5월 폐점하는 NC백화점 서면점이 대표적인 사례다. NC백화점을 운영하는 이랜드리테일은 재계약 의사를 전했지만 건물주인 대우건설이 주상 복합 건물 재개발 계획을 굳히면서 문을 닫게 됐다.
대형마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홈플러스 목동점은 오는 11월 계약 만료를 앞두고 5월부터 본격적인 폐점 절차에 착수할 예정이다. 홈플러스는 계약 연장 의사를 밝혔지만 소유주인 양천구청이 부지 개발 의사를 밝히면서 협상이 불발됐다. 양천구청은 홈플러스 건물을 철거하고 해당 부지를 공개 입찰로 매각해 오피스, 주상복합 등으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이다.
한 때 지역마다 유치 경쟁을 벌이곤 했던 대규모 유통 시설은 최근 수요 감소, 내수 침체 등을 겪으며 점차 밀려나고 있다. 유통업체가 체질 개선을 위해 점포를 매각하는 것 외에도 재계약 불발로 폐점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모습이다.
게다가 백화점·대형마트 점포 시설은 우수 상권, 교통 요지 등 노른자 땅에 자리 잡아 부동산 가치가 높은 편이다. 토지 소유주도 유통 시설로 유지하는 것 보다는 자산가치가 높은 오피스·레지던스 등으로 바꾸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다. 롯데마트의 경우 자가 점포인 수원 영통점 부지에 지상 49층, 지하 5층 규모 대형 시니어 레지던스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시장에서 유통 시설 보다는 오피스·레지던스 시설 가치가 높다는 시각이 많아지고 있다”며 “말 그대로 원치 않게 '방을 빼는' 대규모 유통 점포의 사례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경하 기자 maxkh@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