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경의 SF 프로토타이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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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적인 기술 발전의 배후에는 종종 SF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이야기들이 있다. 전 세계를 이끄는 많은 테크 기업가들이 SF 팬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순수 창작물, 즉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에서 기술적 영감을 얻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다이아몬드 시대'와 '스타트렉'에서 '킨들'과 '알렉사'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구글의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스노우 크래시'에서 구글 어스의 영감을 받았으며, 오큘러스의 팔머 러키는 '스노우 크래시', '레디 플레이어 원' 등의 작품들로부터 몰입형 가상 현실 경험을 구상했다.

1. 누군가가 머릿속의 영감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었다. 2. 누군가가 그 이야기에 감화되어 기술로 만들었을 때 성공하는 확률이 높아진다 라는 공식은, 낯설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야 할 시점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 ‘이야기’라는 것은 사용자 경험 개선과 제품개발을 위한 스토리텔링(Storytelling),브랜드 내러티브(Brand Narrative), 컨셉 스토리(Concept Story)같은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셉션, 스타트렉, 아바타, 레디플레이어원이나처럼 순수 창작물을 뜻한다. 기술을 만들기 위해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재미를 위해 만든 이야기이다.

선진 기술개발국으로 발돋움하면서, 단순히 타 제품을 모방하는 방식만으로는 수익 창출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율곡 이이가 임진왜란을 앞두고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것처럼 미래 기술을 선도하려면 SF팬덤을 수백만 명 만들어야 한다.

이미 선진국들을 포함해 중국도 국가 정책으로 과학 굴기를 앞세워서 SF팬덤에 상을 주는 등 노력을 하고 있다. 국가 정책적으로 SF 작품의 번역에 힘을 쏟고, SF 팬덤과 작가들을 키우고, 외국 팬덤과의 국제적 교류 등의 과정에서 ‘삼체’라는 글로벌 베스트셀러도 출현했다.

그 결과 중국내 더 많은 SF팬덤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 내에서 SF 팬덤을 확장시키고자 노력하는 것, 그리고 테크인들이 자신들을 즐겁게 하는 재미있는 SF를 찾아서 읽어보는 것이 미래 기술 혁신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SF를 이해하는 것은 과학기술을 넘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여정이다. 이러한 이해는 우리가 보다 혁신적인 기술의 청사진을 그릴 수 있게 하는 창의적 능력을 발전시키며, 이는 결국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어준다.

셰익스피어가 로켓과학자였다면 어떤 SF소설을 썼을까. 도스토예프스키가 대학에서 양자역학을 공부했다면 그의 소설은 어떻게 변했을까. 종교 수도사나 유교 선비, 인문 지성인들이 쓴 소설들이 대중을 공감시켰던 때처럼, 과학의 시대에는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쓰고 읽는 이야기가 새로운 사회적 기술적 가치와 공감, 그리고 무엇보다 미래를 만들어낼 것이다.

필자소개/ 윤여경

문화기획자이자 비영리 문학단체 퓨쳐리안 대표, SF 스토리텔러. 2017년 ‘세 개의 시간’으로 제3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수상했다. 2023년 제6회 CISFC 과학소설 국제교류 공로 훈장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금속의 관능’, SF 앤솔러지 ‘우리가 먼저 가볼게요’, ‘우주의 집’ ‘끝내 비명은’, ‘매니페스토’, 장르 창작법 앤솔러지 ‘장르의 장르’, 장편소설 ‘내 첫사랑은 가상 아이돌’ 등이 있다. 한·중·일 아시아 설화 SF 프로젝트 ‘일곱 번째 달 일곱 번째 밤’을 기획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예술적 환경을 제공하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작가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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