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자주 변화의 순간들로 기억되곤 한다. 1973년 오일쇼크는 그런 순간 중 하나였다. 원유 가격이 배럴당 3달러이던 유가가 12달러로 4배 이상 급등하며 세계 경제에 충격을 주었고, 한국에는 예상치 못한 기회를 제공했다. 원유가격 급등으로 '오일머니'가 대규모 유입된 중동 산유국들의 인프라 건설 붐이 기회가 됐다.

국내 건설 및 관련 기업들이 잇따라 중동으로 달려가 항만과 공항, 댐 건설에 참여했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오일쇼크'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산업자본 형성의 결정적 기반을 마련했고, 그것을 발판으로 1980년대 고속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종류의 전환점, 'AI쇼크'를 경험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의 급격한 발전은 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며, 세계적으로 일자리의 본질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인쇄술의 발명, 산업 혁명, 전기의 발견과 활용, 컴퓨터와 인터넷의 출현, 그리고 생명공학의 발전과 같은 그동안의 인류 혁신적 사건들과도 비교될 수 있다. 이 모든 혁신을 통한 변화는 인류의 생활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AI의 출현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AI가 기본적으로 소프트웨어(SW)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산업구조 재편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 과정에서 SW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기회가 무궁무진하게 열릴 전망이라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SW 산업의 글로벌 위상은 미미한 수준이다. 2022년 세계 SW 시장은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2배 이상인 5000억달러 규모였는데, 우리나라 SW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대에 그쳤다.

다행히도 최근 5년동안 우리나라 SW 수출이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게임과 보안, 시스템SW, 클라우드 등을 중심으로 미국과 일본, 동남아, 유럽 등 해외 진출이 활발하다. 'AI쇼크'를 기회로 활용할 기반은 갖춰져 있는 셈이다.

1970년대 국내 건설업계의 글로벌 점유율이 0.2%대였다는 점에 비춰보면 그나마 더 나은 형편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클라우드에 기반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시장은 국가등 물리적 위치에 구애받지 않고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직접 서비스할 수 있다는 것도 훨씬 유리해진 환경이다.

지난주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제수지 통계에 따르면 1월 경상수지가 30억5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반도체와 승용차, 기계류·정밀기기 수출 호조 덕분이라고 한다. SW 수출이 경상수지에 기여했다는 뉴스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노력해야할 대목이다. AI를 중심으로 글로벌 SW 시장에 거대한 기회가 형성되는 시점이어서 그런 노력은 더욱 시급한 과제다.

기업들은 각자의 기술력을 총동원해 AI의 확산으로 생겨나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되, 개별 SW 기업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정책이나 제도적 인프라, 인력 공급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업계와 힘을 모아야 한다. 특히 SW 수출을 위해서는 국내 생태계가 규모의 경제에 도달해야 하는 만큼 공공 부문의 국산 SaaS 솔루션 도입과 활용을 통한 초기 시장 활성화 정책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SW 기업들을 위해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 국가별 디지털 전환 정책과 기존 사례들을 모니터링해 중장기로 연속성 있는 예산과 수출 지원을 확대하는 등 정부의 도움이 절실하다. 또 중동, 동유럽, 아프리카 등 미개척 틈새시장을 선제적으로 공략해 글로벌 선도국들과 SW 산업 내에서 경쟁이 가능한 구도를 형성해야 한다.

AI쇼크를 기회로 전환하는 것은 과거의 오일쇼크 때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협력하여 AI의 혁신을 기회로 만들고, 이를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면, AI쇼크는 한국에게 반도체 신화와 자동차, 철강, 조선과 같은 또 한번 글로벌 진출을 통한 고속 성장의 기회를 우리에게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주완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해외진출위원장·메가존클라우드 대표 maxlee@megazo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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