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고 날씨가 서늘해지면 점점 건조해지는 게 체감된다. 워낙 습도가 낮아 피부는 물론이고 눈과 입속까지 바싹 마르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겨울철 사무실에는 유독 작은 탁상용 가습기가 자주 보인다.
가습기에서 뿜어나오는 하얀 입자를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전자제품 가까이 가습기를 놓아도 괜찮을지 걱정됐다. 높은 습도는 전자제품 고장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가습기를 포기하기 어렵다면 전자제품과는 어느 정도 떨어뜨려야 좋을까? 이리저리 조사한 결과, 가습 방식에 따라 다르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전자제품 근처에선 '초음파식 가습기' 사용 자제해야
가습 방식은 크게 ①초음파식 ②가열식 ③기화식으로 나뉜다. 초음파식 가습기는 초음파로 진동시켜 미세하게 쪼갠 물방울을 바깥으로 분출한다. 가열식 가습기는 물을 끓여 수증기 형태로 내보낸다. 기화식 가습기는 물이 자연 증발하면서 적정 습도를 유지하는 원리를 채택했다.
세 방식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식은 초음파식이다. 물을 직접 분사하는 방식이라 습도를 빠르게 높일 수 있는데 소비 전력은 낮고 소음은 거의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음파 방식은 세가지 방식 중 전자제품에 가장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 물방울 분출 시 각종 미네랄 입자도 함께 이동하는데, 이 미네랄 입자는 주변 물체에 내려앉아 하얗게 말라붙는다. 미네랄이 전자제품 내부로 유입돼 고착되면 제품 고장을 일으킨다.
미국환경보호국(EPA)은 가습기를 사용할 때 미네랄과 석회질이 들어있는 수돗물보다는 정수된 물이나 순수한 물(증류수)을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국내에서는 수돗물에 석회질이 적다는 이유로 가습기에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의견이 있지만 가습기 주변에 미네랄 성분이 하얗게 말라붙는 현상은 막을 수 없다. 증류수는 미네랄이 없어 고착 현상이 발생하지 않지만 구하기 번거롭다.
따라서 전자제품 근처에서는 초음파식 가습기를 사용하지 않는 걸 권장한다. 불가피하게 사용해야 할 경우에는 전자제품에서 멀리 떨어진 위치에 둬야 한다. 분무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면 전자제품이 없는 방향을 바라보게 하자. 단, 미네랄이 비단 전자제품에만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하얗게 말라붙은 미네랄을 닦아내기 어려운 물건은 가습기에서 먼 곳에 두는 게 좋다.
가열식·기화식 가습기 사용할 땐 '적정 습도' 신경 써야
가열식과 기화식 가습기에서는 미네랄이 함께 날아갈 일은 없다. 물 입자가 초음파식 가습기보다 훨씬 작기 때문이다. 미네랄을 담지 못할 정도다. 당연히 주변에 미네랄이 고착되는 현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단, 가열식 가습기 중에는 고온으로 살균한 물을 초음파로 뿜는 '복합식' 가습기도 있는데, 이 경우 초음파식 가습기와 동일하게 주변에 고착 현상이 발생한다.
가열식과 기화식 가습기는 물을 직접 뿜는 방식이 아니다 보니 주변 전자제품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전자제품에 안전한 가습 방식으로 보긴 어렵다. 가열식이나 기화식 가습기를 사용하더라도 습도를 지나치게 높이면 전자제품에 영향이 생길 수 있다.
전자제품에 영향이 적은 습도는 어느 정도일까. 제품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수치가 정해진 건 아니다. 카메라처럼 습기에 약한 제품은 보통 습도 30~40% 환경에서 보관할 것을 권장한다. 실내 최적 습도가 50~60%라는 점을 고려하면 카메라를 가습기와 같은 공간에 두는 일은 피해야 한다.
스피커 같은 음향기기도 주변 습도에 신경 써야 한다. 습도가 너무 높으면 소리를 재생하는 드라이버가 변형되거나 내부에 곰팡이가 자리 잡을 수 있다. 노트북이나 컴퓨터는 주변 공기를 빨아들여 열을 식히는데, 근처에 가습기가 있으면 습도가 높은 공기를 빨아들여 부품이 고장 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노트북이나 컴퓨터를 사용한다면 흡기구 근처에 가습기를 두지 말아야 한다.
✔ 4줄 요약
①증류수를 넣을 게 아니라면 초음파식보다 가열식이나 기화식 가습기를 권장한다.
②습한 공기가 전자제품 쪽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가습기 위치와 방향에 신경 써야 한다.
③가열식 가습기를 사용한다면 초음파로 물을 뿜는 복합식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④근처에 습기에 약한 제품이 있다면 실내 적정 습도보다 낮은 습도를 유지하는 게 좋다.
테크플러스 이병찬 기자 (tech-pl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