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연시 서점엔 경제, 사회, 문화 트렌드를 소개하는 책이 쌓인다. 시대와 양상에 맞는 신조어가 쏟아진다.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세계모바일박람회(MWC)는 인공지능(AI), 모빌리티, 6G 등 새해 트렌드를 소개하는 행사를 연다. 전형적인 트렌드 마켓이다.
트렌드는 뭘까. 경향, 추세 또는 단기간 지속되는 변화와 양상을 말한다. 세월이 흘러 행동양식으로 자리 잡으면 문화가 된다. 소비 우위 시대엔 트렌드가 시민에 의해 만들어졌다. 산업화, 정보화, 민주화를 거치면서 트렌드는 기업이 제안하고 사회가 동의할 때 만들어진다. 경제침체기엔 자본, 기술로 무장한 기업이 트렌드를 먼저 만들어 시장을 시험한다. 고객을 직업, 재산 등 구매력으로 나누고 MZ 등 세대를 구분한다. 데이터를 이용해 고객 취향에 맞춘다. 상류층에겐 명품 의류, 신발과 가방, 귀금속 등 프리미엄 상품을 팔고, 저소득층에겐 플랫폼을 통해 저가의 품질 좋은 상품을 판다. AI는 트렌드가 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체스게임에서 사람을 이겼지만 밋밋했다. 바둑에서 사람을 이기고 AI챗봇이 나오자 관심을 끌었다. 일자리를 뺏는다는 등 비난에 움츠렸다. 챗GPT에 와선 높은 품질과 사업기회를 자랑하며 대세가 되었다. 투자와 홍보의 승리다. 학계와 언론은 무료 광고판이 되었다. 그 뒤엔 뭐가 있을까. 트렌드를 넘어 문화로 만드는 트렌드세터 빅테크 기업의 AI전략이 있다.
트렌드는 단기 돈벌이에 그치기에 기업은 안정적 수익을 위해 문화로 만들려고 애쓴다. AI가 생활필수품이 되는 것이 목표다. 상생의 트렌드는 AI플랫폼을 만들고 그 위에 많은 기업들이 달라붙어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돕는다. 스마트폰 생태계를 만들면 수많은 기업이 달려들어 소프트웨어(SW), 부품, OS시스템과 애플리케이션을 붙여 상생하는 것과 같다. 플랫폼 수수료 등을 높여 착취 트렌드가 될 위험도 있다. 온라인, 모바일, 메타버스로 넘어가는 새로운 장터를 열어 오프라인에 없는 상품을 개발해 공급하는 트렌드가 미래다. 다양한 미래 소비 패턴을 실험하여 인플루언서, 크리에이터 등 소비 트렌드 리더를 지원, 촉진한다.
글로벌 시장에선 트렌드세터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트렌드 팔로어는 트렌드세터에 종속되어 성장에 한계가 있다. 트렌드세팅에 성공하면 새로운 트렌드를 추가 개발하고 연결해 몰입도와 의존도를 높인다. 스마트폰에 삶을 위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추가하고 AI를 통해 연결하는 것과 같다. AI는 서비스를 운용하면서 성장을 계속하는 모델이므로 소비 트렌드를 쉽게 읽어 공급 트렌드를 강화해 나간다. 시장은 트렌드세터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애플 아이폰, 구글 안드로이드, 오픈AI GPT는 대표적 트렌드세터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트렌드를 뒤집을 경쟁 트렌드를 내놓고 싸울 수 있다. 축구감독 히딩크는 기술중심 축구를 이기려고 선수 체력강화 전략을 내세워 성공했다. 트렌드를 추종해 유사 트렌드로 맹추격하는 것도 어쩔 수 없을 땐 필요하다. 국내 생성AI 기반 모델이 그렇다. 인터넷에서 상거래가 성공한 것처럼 다른 기업의 트렌드를 기반으로 한 강력한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 트렌드를 따르되 자신만의 강점으로 파고들 수 있다. 우리는 통신, 부품, 기기에 강점이 있다. 'AI 온 디바이스' 전략을 보자. 디바이스에 저장된 데이터만을 이용하면 에너지효율이 높다. 사생활보호, 보안강화에 유리하다. 인터넷, 클라우드 연결없이 쓸 수 있다. 기대된다.
트렌드 전성시대의 '기업다움'은 뭘까. 트렌드마켓에선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나를 따르라!'고 외친다. 우왕좌왕 휩쓸려선 종속된다. 기업의 존재이유(핵심목적)를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부끄럽지 않은 트렌드와 문화를 만들어 주주, 임직원, 고객과 함께 가꿔야 한다. 전략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숨기고 있다가 적시에 내놓아야 한다. 글로벌 시장을 두고 다투는 세계화 시대엔 트렌드와 문화를 끊임없이 실험하고 선도하는 창의만이 대한민국을 살린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