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 R&D 예산 수술, 환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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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석 기자

올해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은 26조5000억원 규모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과 비교해 6000억원가량 늘었다. 하지만 전년도 31조 1000억원과 비교하면 4조6000억원(14.7%) 감소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비효율적인 정부 R&D 예산 편성을 지적하며 대대적 '수술'을 지시한 데 따른 결과다.

정부 R&D는 그동안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시장에서 직접 뛰는 기업을 뒷받침해 산업 생태계 저변을 넓히는 한편 첨단기술 패권을 노리는 정책 기조를 고수했다. 이에 따라 산·학·연에 투입하는 R&D 예산 규모는 꾸준히 늘어왔다.

갑작스러운 R&D 예산 감소가 국내 산업계 전반에 던진 충격파는 적지 않다. 한순간에 과제 예산이 절반 이상 깎인 기관·기업이 속출했다. 사실상 과제 포기를 선택해야 하는 수준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정부 R&D 예산이 쓸데없는 곳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실제로 수술대에 올려야 하는 환자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30조원에 달하는 정부 R&D 예산에는 기술입국이라는 대의부터 개개인의 생계까지 복합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면서 “환자가 주무 부처인지, 기업인지, 출연연(정부출연연구기관)인지, 대학인지 구체화해 매우 조심스럽고 정교하게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혼란에 빠진 국내 산업 생태계를 바로잡을 거버넌스와 예산체계는 오는 4월 치러지는 22대 국회의원선거(총선) 이후에나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주무부처를 비롯해 정부 R&D 예산에 '메스'를 드는 주체들이 진정한 '환자'를 찾아내 면밀하게 '진찰'하고, 신중하게 '수술'하기를 바란다. 환부를 도려내겠다고 잡은 칼로 애먼 사람의 생살을 잘라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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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석 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