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과 1, 2위를 다투던 기업이 있습니다. 제대로된 개인용 컴퓨터도 없던 시절. 국내에서 가장 먼저 컴퓨터를 생산하고 빠르게 성장했었죠. 바로 190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 PC 제조사로 이름을 날리던 ‘삼보 컴퓨터’입니다.
삼보의 영향을 받아 삼성전자를 비롯한 많은 기업이 하나둘 PC 제조업에 뛰어들기도 했죠. 하지만 삼보 컴퓨터는 인터넷, 소프트웨어 등 여러 사업으로 발을 뻗다가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이후 10년 가까운 방황 끝에 현재는 PC 제조업으로 돌아왔다고 해요. 이전에 없던 다양한 컴퓨터 제품도 판매 중이라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삼보 컴퓨터 제품이 발견되기도 하더라고요. 요즘 삼보 컴퓨터의 근황은 어떤지 함께 살펴보기로 해요.
국내 PC 시장에서 ‘최초’ 타이틀 싹쓸이
삼보 컴퓨터는 1980년 설립됐습니다. 국내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SE-8001)도 삼보에서 내놨었죠. 가격은 당시 1천만원 정도로 매우 높았다고 해요. 당연히 일반 가정보다는 기업에서나 관심을 가질 정도로 수요층은 제한적이었죠.
삼보는 1982년 애플 2 컴퓨터 호환 기종인 ‘트라이젬 20’이라는 가정용 PC를, 1985년에는 국내 PC 제조사 최초 IBM PC AT 호환 기종 ‘트라이젬 286’을 출시하기도 했죠. IBM PC AT 호환 기종이란 미국 IBM사에서 만든 IBM PC AT 아키텍처에 기반한 PC입니다.
현재 시장에 출시되는 대부분의 PC들에 인텔의 X86 아키텍처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실 거예요. 이와 달리 과거에는 PC마다 각기 다른 아키텍처가 채택됐어요. 1981년 IBM사가 IBM PC를 출시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IBM사가 PC 아키텍처를 오픈소스로 공개했던 건데, 삼보 컴퓨터를 포함한 많은 PC 제조사들이 이를 활용하기 시작했던 거죠. 제조사들은 PC와 호환되는 CPU, 칩셋 등을 구성하고 다양한 PC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 삼보 컴퓨터는 ‘트라이젬 20XT’도 출시했는데요. 해당 제품은 국내 PC 제품 최초로 해외 수출에 성공하면서 더욱 본격적인 가정용 PC 시장을 개척하기도 했어요. 이후로도 삼보 컴퓨터는 여러 PC를 출시했고요.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해요.
삼성에 1위 양보한 삼보…이것저것 시도하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후발주자로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삼성은 1993년 채시라를 모델로 내세운 그린 컴퓨터를 출시했는데요. 해당 PC 판매로 삼성은 인지도를 알리는 데 성공합니다. 결정적으로 1994년 출시한 매직스테이션 제품으로 큰 인기도 확보했어요. 제공되는 게임 번들도 다양하고 많았던데다가 관련 생산성 앱도 대거 탑재했죠. 매직스테이션으로 삼성은 국내 PC 시장 판매량 1위를 달성했다고 해요.
삼보컴퓨터는 이후로 저가형 브랜드 이미지를 밀고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과 1998년 판매된 삼보 컴퓨터 ‘체인지업’ PC는 큰 수익도 달성했는데요. IMF 경제위기로 국내 상황은 열악했지만, 당시 인기 있던 야구선수 박찬호를 모델로 인기를 얻는 데 성공했다고 해요.
그럼에도 삼보 컴퓨터는 꾸준히 출시되는 삼성 매직스테이션 인기에 점차 뒤처졌습니다. 1995년부터 매직스테이션 후속 모델을 출시한 삼성은 인기 있는 연예인만 쏙쏙 골라 홍보 모델로 기용하면서 인지도를 더욱 높여갔고 인기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됐죠.
결국 삼보 컴퓨터는 1990년대 말부터 조금씩 다른 사업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어요. 발 뻗은 사업만 50개가 넘었다고 하는데요. 삼보 컴퓨터 계열사인 나래 이동통신과 손잡고 발신 전용 이동통신전화 시티폰에 필요한 장치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고요. 국내 최초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두루넷도 운영했죠. 그러나 모든 사업은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삼보 컴퓨터는 부채를 떠안게 됐고 단숨에 휘청하게 됐죠.
휘청한 뒤 몇 번의 인수…스마트폰도 팔아봤다
승승장구했던 삼보 컴퓨터는 퇴락의 길로 접어드는듯 했습니다. 2005년에는 자금난으로 법정 관리도 신청할 정도였다고 해요. 2007년 법정 관리 중에 삼보 컴퓨터는 디지털 셋톱박스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셀런에 인수됐는데요. 인수된 후 삼보는 인텔 코어 2 듀오 칩셋을 탑재한 ‘리틀루온’ PC도 출시했지만 제대로 된 성과는 없었고, 위태로운 나날들이 지속됐어요.
그러던 중 2012년 삼보 컴퓨터는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게 됩니다. 초창기부터 삼보 컴퓨터와 협력했던 자회사 나래 이동통신에 인수된 것이었죠. 회생 가치가 점차 떨어지고 있던 삼보를 살리기 위해 나래 이동통신은 최후의 결단을 내립니다. PC와 스마트폰 사업에만 집중하기로 하죠. 그 외 다른 사업은 청산에 돌입했어요.
그렇게 삼보 컴퓨터는 또 한 번 여러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합니다. 2015년 TG앤컴퍼니와 안드로이드 중저가 스마트폰 ‘루나폰’도 출시했는데요. 당시 유명했던 걸그룹 AOA 설현을 모델로 세워 인기몰이에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2016년 후속 제품 루나폰 S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 데 실패했고, 삼보는 스마트폰 사업을 접게 됩니다.
돌고 돌아 PC로 돌아온 삼보 컴퓨터
삼보 컴퓨터는 결국 PC 제조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2020년 PC 제조업에 완전히 몰두한 후 삼보는 특히 정부기관, 초⋅중⋅고등학교 등 공공기관용 PC 판매에 성공했죠.
조달청은 지난 2023년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나라장터의 시장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2022년 1년 동안 삼보 컴퓨터의 공공조달 PC 공급 계약 대수는 대우루컴즈와 에이텍 등 컴퓨터 제조업체를 제치고 가장 많은 PC 판매를 달성했어요. 특히 데스크톱 컴퓨터 부문에서는 2위 대우루컴즈보다 8000대나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죠.
올해 7월에는 또 한 번 삼보 컴퓨터 사업부가 나뉘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삼보는 각각의 사업에서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핵심 사업과 비핵심 사업을 구분하기로 결정했어요. 무엇보다 PC 사업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이 핵심이었죠. 사업부의 이름은 기존 삼보 컴퓨터 이름 그대로 유지되며, PC 개발과 판매를 이어가기로 하죠. 2023년 상반기 기준 특히 PC는 삼보 전체 매출 중 92%인 336억원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사업으로 자리하고 있어요.
그 밖에도 삼보 컴퓨터는 여러 사업부를 두고 다양하게 제품을 판매하는데요. 비핵심 사업부 중 하나인 티지디엑스에서는 마우스와 키보드처럼 컴퓨터에 필요한 주변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고요. 티지앤컴퍼니로 스마트워치 ‘루나’ 브랜드를 운영하며 관련 사업을 전개하고 있죠.
그 중에서도 특히 티지디엑스의 활약은 의외의 장소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바로 ‘가성비’ 물품이 대거 모여 있는 다이소인데요. 케이블, 마우스, 키보드 등 다양한 삼보 제품들이 다이소에 모여있다고 해요. 우리 주변 어딘가 알게 모르게 스며든 추억 속 삼보가 신기하지 않으신가요?
테크플러스 최현정 기자 (tech-pl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