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촉발한 반도체 수요 폭증은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다. 올해 반도체 시장 규모는 역대 최대치인 1조달러(약 1480조원)에 근접할 것으로 관측된다.
◇WSTS “올해 반도체 시장, 전년比 26.3% 성장”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모 전망치는 9750억달러(1440조원)다. 지난해(7720억달러)보다 26.3% 성장,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관측됐다.
WSTS는 “메모리 반도체 부문이 전년 대비 39.4% 성장하는 등 모든 제품군에서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며 “지역별로는 미국 34.4%, 아시아태평양 지역 24.9%를 비롯한 모든 권역에서 10% 이상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WSTS의 이같은 전망은 AI 서비스 확산과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 영향으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여기에 탑재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생성형 AI를 구동하고,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기 위한 필수 인프라다.

또 원격 서버를 거치지 않고 스마트폰이나 PC가 직접 AI 연산을 처리하는 '온디바이스 AI' 기기 보급 확대도 반도체 시장 고속 성장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신경망처리장치(NPU)는 온디바이스 AI 구현을 위한 핵심 반도체로 손꼽힌다.
◇메모리 3사, 올해 HBM 완판…범용 D램도 공급 부족
다양한 AI 반도체 중에서도 시장 성장의 핵심 동력은 HBM이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적층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끌어올린 반도체로, AI 가속기에 필수적으로 탑재되는 메모리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HBM 시장 규모는 598억달러(88조원)로, 전년(416억달러) 대비 43.8% 성장이 예상된다. AI 가속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엔비디아 GPU 이외에 엔비디아 대항마로 주목받는 구글 텐서처리장치(TPU)나 아마존 트레이니움 등 주문형반도체(ASIC)에도 HBM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 성장 요인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은 일제히 2026년 HBM 물량이 완판됐다고 밝혔다. 올해는 물론 2027년에도 수급 불균형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HBM 품귀 현상은 범용 D램 공급 부족으로 이어지고 있다. 메모리 3사가 범용 D램 생산 라인을 HBM으로 전환, D램 생산량이 줄고 있어서다. 이에 범용 D램 단가가 8개월 만에 6배 상승하는 등 가격도 폭등하고 있다.
메모리가 '슈퍼사이클'에 진입한 배경이다. AI 컴퓨팅이 최근 추론 영역으로 확장, D램에 이어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등 낸드플래시 수요도 늘고 있어 메모리 전 제품에서 초호황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장비 업계도 '낙수효과' 기대감
반도체 장비 업계에도 훈풍이 불 전망이다. 반도체 수요 급증은 칩 제조사들의 증설과 설비투자 확대로 이어진다. 메모리 3사는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지난해보다 늘릴 예정이다.
SEMI(옛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는 올해 반도체 장비 매출이 1450억달러(214조원)로, 전년(1330억달러) 대비 9% 성장을 전망한다고 밝혔다. 2027년에는 1560억달러(230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후공정 부문에서 반도체 장비 구매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SEMI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테스트 장비 판매는 전년보다 48.1% 늘었고, 조립·패키징 설비는 19.6% 늘었다.
반도체 미세화와 집적도 증가로 테스트 난도가 높아지고 있는 데다, 발열을 최소화하고 서로 다른 칩을 연결해 성능을 극대화하는 이종집적에서 조립·패키징 기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HBM에서도 실리콘관통전극(TSV)과 열 압착(TC) 본딩 등 패키징 기술이 성능과 수율을 좌우하는 요인이다.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