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칼럼]기후소송 급증, 정부·기업도 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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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정 법무법인 원 변호사·ESG센터장

올해는 단풍을 즐길 여유도 없이 겨울이 찾아왔다. 따뜻한 가을이 계속되는 바람에 제대로 물들지 못한 가로수들은 녹색이 아직 남아 있는 이파리들을 떨어뜨리기에 바쁘다.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비영리 단체 '클라이밋 센트럴'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가 12만5000년 전 마지막 간빙기 이래 가장 더운 1년이라고 한다. 지구 기온은 계속 상승하고 있으며, 극심한 가뭄과 태풍, 폭우, 산불 등 심각한 자연재해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후 변화 원인을 제공한 책임을 기업에 묻거나, 기후변화를 방지하기 위해 입법 및 정책을 취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는 '기후소송'이 증가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과 미국 컬럼비아 대가 공동 발간한 '글로벌기후소송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세계 65개국에서 2180건 기후소송이 제기됐다.

우리나라에도 청소년들이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미래세대를 포함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으로 헌법소원을 청구한 사건이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이다. 2021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독일 연방기후보호법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미래세대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이라고 판단한 사례나, 올해 8월 미국의 몬태나 주 법원이 정부가 석탄·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개발을 허용한 정책은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살아갈 헌법상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단한 사례 등을 보면 여러 나라에서 정부의 기후변화 정책에 대해 사법부가 적극적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이 호주 북부 티모르해에서 진행하는 천연가스 개발사업으로 인해 과다한 온실가스와 오염물질이 배출되고 이로 인해 현지 주민들의 재산권과 환경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국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이 제기된 사례도 있다. 국내 소송에서는 기후활동가와 현지 주민들로 구성된 원고들이 패소했지만, 호주에선 가스전 개발사업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져 결국 사업이 중단됐다. 기후소송이 환경파괴에 대한 문제제기 수준을 넘어 실질적으로 사업에 영향을 미친 사례다.

법률은 인간 중심의 규범체계로서, 환경파괴로 인한 피해는 인간이 입은 경제적 피해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경제적 피해로 환산할 수 없는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나, 미래세대에 미치는 영향 등은 전혀 고려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법의 한계를 넘어 생태문명으로 전환하기 위한 새로운 법체계를 고민하고, 입법, 행정, 사법의 각 영역에서 다양한 실천방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래세대의 권리'나 '자원개발이 이루어지는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권리', '동물의 권리' 등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주장으로 여겨져 왔으나,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이러한 권리들이 세계 각국에서 법원의 판결을 통해 구체적 권리로 인정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피해 당사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기후소송을 제기하기 어렵고, 기업의 기후관련 정책이나 온실가스 배출량 등을 공시하도록 하는 제도가 없지만, 앞으로 기후공시제도가 의무화된다면 기업을 상대로 하는 기후소송도 점차 증가할 것이다.

기후소송과 함께 그린워싱에 대한 규제와 감시도 강화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6월 그린워싱 판단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환경 관련 표시·광고에 관한 심사지침'을 개정했다. 지침에서는 의류의 재활용 섬유 함량을 2%에서 3%로 늘린 경우 '재활용 함량 50% 증가'로 표시하게 되면 기술적으로는 사실이나, 재활용 섬유 1%를 더 사용한 것이 실질적인 환경 개선을 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그린워싱에 해당한다는 등 엄격한 심사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인간은 지구 공동체의 한 부분이며, 인간의 모든 활동은 지구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에서는 어떤 기업도 살아 남을 수 없다.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가 가시화될수록 정부와 기업의 변화를 촉구하고, 책임을 묻는 기후 소송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해외의 기후소송 흐름은 국내 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일은 더 이상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정부와 기업의 당면 과제가 되고 있다.

이유정 법무법인 원 변호사·ESG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