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OECD 행복지수 작업과 액션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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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찬 한성대 교수

지난 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WISE 센터와 통계청은 GDP를 넘어 삶의 질(QoL, Quality of Life) 측정과 관련한 아시아 지역에서의 이슈를 논하는 국제세미나를 열었다. OECD 수립 5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구축된 '더 나은 삶의 지표(BLI, Better Life Index)'는 지난 10년간 세계 각국에서 '삶의 질'의 중요성을 주류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리에게 미친 영향도 크다.

행복·복지라는 단어를 자기 정진의 의지가 부족한 사람들이 쓰거나 진보 진영의 거슬리는 슬로건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의 행복 수준이 다른 회원국보다 낮다는 사실이 노출되기를 우려, '삶의 질' 지수 수립은 10년을 공전하기도 했다. 필자는 BLI 탄생 때부터 OECD와 인연을 맺고 경제학과 연관 짓기 위해 줄곧 소통해왔기에 이들이 얼마나 토대 마련과 확산에 노력을 기울였는지 잘 알고 있다. 이들의 땀과 성과에 경의를 표한다.

세미나에서 제시된 다양한 의제에 대해 나름 필자의 의견을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삶의 질'의 중요성을 국민 계정체계에 통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많은 국가가 부탄과 같이 국민총행복을 국시로 헌법에 명기하고 정책에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혹여라도 '삶의 질' 추구로 인해 경제 성장이 희생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BLI의 모태가 된 스티글리츠 보고서에서 언급한 가사 노동의 금전적 평가를 비금전·사회적 가치를 지닌 환경·안보 등 공공재적 '삶의 질'로도 확장하면서 UN의 환경-경제 회계 체계(SEEA)를 구체화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둘째, 지속 가능한 복지를 위한 주요 축인 사회자본 부문에서는 신뢰 지표를 강화했으면 한다. 신뢰란 내가 무방비 상태에 놓였더라도 상대방이 배신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이 돼주리라는 믿음이다. 이런 믿음의 대상에는 비단 지인·일반인뿐 아니라 집권층·정부도 포함된다. 과도한 권력 남용이나 규제 같은 불비(不備)한 국가지배구조는 권력 기구의 중립성 훼손과 시장기능 저해를 가져온다. 국민의 불신과 무력감을 초래하기에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셋째, OECD는 BLI 틀을 근간으로 '삶의 질'을 조망하기 위한 툴킷을 만들어 보급하고 필요에 따라 각국 현황을 직접 평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부 국가는 2030년 시한인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 여부를 모니터하면서 자발적으로 '삶의 질'을 개괄한다고 한다. 그러나 자기 평가는 자칫 객관성을 상실할 우려도 있다. 오히려 외부와의 평가·대화 과정에서 보이지 않던 자신의 모습이 더 잘 드러날 수도 있다. 또한, SDGs를 달성하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필자에게는 이십여 년 전 통신 분야에서 OECD가 수행했던 규제개혁 평가가 우리나라가 주요 정책을 한눈에 개관하고 최선 모범모델에 따라 선진화하는 역할을 했던 좋은 기억이 있다.

세미나를 계기로 우리도 고민해야 부분이 많다. 어렵사리 만들어낸 '삶의 질' 지수의 지표 수가 70여 개나 되다 보니 지향점이 읽히지 않는다. 소외계층 지표들을 떼어내고 다차원적으로 확장해 약자 보호 정책과 연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여러 불평등지표는 OECD 종단 데이터로 보면 통계적으로 유사하기에 대표 지표로 축소해도 무방하다. SDGs에 관한 관심과 적극적 실행도 중요하다. SDGs는 BLI의 '삶의 질'에 대응하는 항목의 최소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한 액션플랜이기에 이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동참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국가 공인 지표를 총괄하는 통계청의 중립성 확립도 시급한 과제다. 매번 집권층·정부 의중에 통계가 은폐·조작된다는 외풍 논란은 유감스럽게도 OECD 내에서도 우리만의 문제라는 전언이다. 올바른 통계는 현상과 그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합당한 조치나 정책을 수행하는 데 필수다. 무엇보다 이는 정보 제공 대상자가 되는 국민으로부터의 혈세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lcee@han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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