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국내 가전 유통시장이 코로나19 유행 이후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소비심리가 얼어붙었던 코로나 유행 초기보다 더 심한 '소비절벽'에 부딪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가전제품 경상금액(판매액)은 16조675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8조1890억원)과 비교해 8.3% 감소했다.
통상 상반기는 TV, 세탁기, 냉장고 등 주류 가전 신제품이 대거 출시되는 데다 여름을 맞아 에어컨 구매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신제품 교체와 계절가전 수요가 시장 실적을 좌우한다.
올해 상반기는 두 개의 성장 견인 요소가 모두 작용하지 못하면서 부진 탈출에 실패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탓이다.
국내 가전시장은 지난해 3월 이후 올해 6월까지 16개월 연속 내림세다. 분기로는 2021년 4분기 이후 6개 분기 연속 역성장이다.
마이너스 성장을 넘어 부진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는 게 더 큰 고민이다. 올해 국내 가전시장은 코로나19 유행으로 소비심리가 바닥을 쳤던 2020년 상반기 보다 심각한 부진에 빠졌다.
올해 상반기 가전 판매금액은 2020년 상반기(16조7880억원)와 비교해도 2.6% 줄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경기침체가 본격화되고 오프라인 매장 발길이 끊겼던 최악의 부진 시기보다도 실적이 좋지 않다.
하반기 가전 성수기에 진입하지만 전망은 어둡다. 8월 폭염으로 3분기 에어컨 판매에 긍정적이지만 전체 시장 분위기를 바꾸기에는 제한적이다. 고금리, 고물가 국면이 이어지는 데다 수요 회복을 위한 가전 업계 마케팅 투자도 여의치 않다. 수익성 회복이 관건인 상황에서 무리한 마케팅 비용 집행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수요를 견인할 외부 요인도 마땅치 없다는 점도 고민이다. 가전 업계는 당분간 연구개발(R&D) 투자나 신제품 출시 등을 줄이면서 재고 관리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고물가 시대를 겨냥한 중저가 제품 출시 확대와 해외 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물가, 고금리 기조에 부동산 경기까지 침체해 가전 수요를 회복할 모멘텀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그나마 물류, 원자재 비용이 점차 안정화되고 동남아시아 등 해외 수요 회복 조짐이 보이면서 다양한 전략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