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구 부장판사는 정년퇴임을 200일도 채 남기지 않았으나, 생성형 인공지능(AI)과 리걸테크에 대해 통달해 있다. 그는 1985년 육군사관학교 교수 시절부터 정보기술(IT) 분야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후 꾸준히 생성형 AI를 탐구,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이같은 기능을 법조인이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강 부장판사와의 일문일답 전문이다.
-리걸테크의 종류가 이용자-변호사 중개부터 시작해 판례 분석, 예측 등 다양하다. 리걸테크의 범위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로 보는지.
▲리걸테크의 종류와 분류는 보는 견해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을 수가 있다. 단순한 판례 데이터베이스(DB)를 기반으로 정보 제공하는 회사, 법조 생성형 AI 회사, 형량 예측하는 회사, 각종 양식을 제공 회사, 변호사 사무실 사무 자동화 회사 등도 있다.
최근에는 인텔리콘, 로앤굿 등을 중심으로 생성형 AI를 리걸테크에 도입하고 있다. 리걸테크 AI는 앞으로 리걸테크의 핵심 분야가 될 것이다. 미국의 웨스트로(WEST LAW)와 렉시스넥시스(LEXIS-NEXIS) 양대 DB 사업자가 자신들의 주 사업 목적을 법조 생성형 AI로 방향을 바꾼 것을 보더라도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단순한 사무 자동화부터 판례 DB, 법령 DB, 문헌 DB를 공급하는 것은 전통적인 리걸테크 분야였지만, 이제 대세는 전통적인 리걸테크에 생성형 AI 엔진인 LLM 모델을 입히는 것이 글로벌 리걸테크의 추세가 될 것이다.
-국내 리걸테크 발전 속도는 해외에 비해 느린 편인데, 그 이유를 무엇이라 진단하는지.
▲결정적 이유는 법조 전문가 시장 자체가 거의 없었고, 근자에 와서야 로스쿨 도입 이후 이제 3만5000명의 법조 시장이 형성돼 리걸테크 소비자 수가 협소한 것이 원인이다. 미국은 이미 130만명이 넘는 변호사 거대 시장이 존재한다.
그다음 이유는 엄격한 개인정보보호법 등으로 인해서 각급 법원의 실시간 판결이 실시간으로 사회와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 리걸테크 회사에서 쓸 수 있는 데이터가 지극히 제한돼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발간의 판례공보에는 대법원이 판결하는 수많은 판결 중 극히 일부만 한 달에 1일과 15일 2회에 걸쳐서 속보 형식으로 정리해서 제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전국 1, 2심 법원에서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판결에 엄청난 참조 가치가 있는 자료들이 많은데, 그것도 역시 실시간 외부에는 제공되지 않고 있다.
다행히 최근 엘박스 회사에서 사건에 관여한 변호사들의 자진 신고를 기반으로 280만건이 넘는 하급심 판결을 자발적으로 수집하고 익명 처리해서 제공하고 있다. 사실상 판결문 공개 취지에 부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국내 리걸테크 산업의 비약적 발전이 어려운 것은 그 기초 토대가 되는 데이터 공개의 제한과 한정에 있다고 할 것이다.
-리걸테크 활성화가 법조계에 어떤 효용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하는지. 특히 어떤 서비스에 대한 전망을 긍정 평가하는지.
▲리걸테크 활성화, 특히 법조 생성형 AI가 도입되면 법조 사무처리 업무 프로세스에 혁명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우선 법원 내부에서 본다면 법관 1인당 능력을 3~5인의 힘을 합친 것처럼 증가시키고, 법관 1인당 재판연구원 서너 명을 증원해 준 것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1심 합의부 배석 1인당 1주당 세 건의 판결을 쓰는 것이 통상적인 모습이 되었지만, 판결문 작성 도우미 AI가 도입되면 단순히 3건이라는 숫자로 제한되지 않고, 엄청난 효율을 올릴 수가 있다.
물론 이럴 때도 사건 결론을 내리는 것은 인간 법관이 집중해서 결론을 내리고, 판결 이유를 작성하는 페이퍼 작업에 도우미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야 법조에 관해서 본다면 어쏘 변호사의 일 총량이나 생산성을 세 배 또는 다섯 배 올릴 수 있어서 어쏘 변호사의 고용시장이 불안정해질 수 있는 부작용도 예상된다. 특히 대형 로펌 위주의 경쟁력이 강화된다고 우려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군소 부티크 로펌이나 개인 변호사 사무실에서도 지금까지 손대지 못했던 다양한 분야의 법률 사무처리를 위해 생성형 AI를 도입해서 종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능률을 올릴 수가 있다. 새로운 틈새시장의 충분히 진출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획득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와서 법조시장 전체가 역동적으로 재편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법조 생성형 AI의 흐름에 올라타지 못하고 아날로그식으로 생활하는 법조인들은 조만간 생성형 AI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법조인들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법률 산업이야말로 생성형 AI가 접목될 수 있는 최적의 분야라 판단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법률 산업은 논리로 구성된 산업이다. 모든 것이 수학 원리나 공식처럼 기승전결로 논리가 맞아야지만 그 결과가 바르게 나오는 구조이다. 따라서 생성형 AI가 가장 잘 작동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법률 분야라고 할 것이다. 이미 골드만삭스에서 생성형 AI가 그 직업군의 몇 퍼센트를 대체할 수 있는가 하는 조사를 한 적이 있다. 법조 영역의 44%가 생성형 AI로 그 업무가 대체될 것이라는 통계가 나왔다. 전산업 분야에서 일반 행정직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을 보인 바가 있다.
한국뿐만이 아니고 세계 각국 모든 법조 각 분야가 생성형 AI의 영향을 가장 강력하게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법조계의 리걸테크 관련 전반적인 입장과 분위기는 어떤지. 법조계는 왜 리걸테크 활용을 꺼리는지. 정서상의 이유인지, 구조적인 한계 때문인지.
▲법조 직역은 전통적으로 문서 위주의 아날로그 중심 사회 구조다. 근자에 전자소송, 전자법정 개념이 주류나 아직도 종이 문서가 업무 처리의 대세다. 따라서 법조계는 태생적으로 리걸테크와 친하지 않은 분야기도 하다.
하지만 공대 등 이공계 출신의 법조 진출이 로스쿨 도입으로 활발해지면서 젊은 법조인 중심으로 송무 업무 대신에 리걸테크 창업이 활발해지는 추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변협과 리걸테크 회사 사이에 많은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변협에서는 리걸테크 회사의 성장이 개별 소속 변호사의 권익을 침해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반면 리걸테크 회사들은 변협의 그러한 자세가 쇄국주의식 좁은 생각이라고 비난한다.
현재 3만명이 넘는 변호사 종사자들은 다양한 계층으로 나누어지고 있다. 대형 로펌부터 군소 부티크 로펌, 개인 사업자까지 그 다양성의 분포가 천차만별이다. 다양한 변호사 직군에서 리걸테크나 생성형 AI를 바라보는 태도나 시각이 각각 처한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상당수 젊은 세대에서는 이러한 생성형 AI가 리걸테크를 통해서 법조 분야에 침투하는 것이 당연한 변화라는 의식도 많이 눈에 띈다. 하지만 아날로그에 익숙한 세대인 중·장년·노년층 변호사들이 새로운 신기술에 대해서 거부 반응이 상당히 있는 것 역시 볼 수 있다.
누구나 구습을 깨기 위해서는 9배의 심리적 고통을 참고 견뎌내야 하듯이 법조인은 이러한 신기술·신문명에 대해서 열린 자세로 수용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생성형 AI를 잘 다루는 법조인이 잘 다루지 못하는 법조인을 대체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혁신 기술에 대한 법조계의 입장을 수용적으로 돌리기 위해 바뀌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결국 역지사지의 자세로 리걸테크 회사들과 변협이 이 사태를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특히 웨스트로와 렉시스넥시스와 같은 세계 양대 법률 DB 사업자가 이미 생성형 AI를 정복하기 시작했다. 특히 웨스트로는 톰슨로이터를 통해 한국의 가장 큰 법조 DB인 로앤비 데이터를 소유하고 있다.
이 양대 글로벌 법조 AI가 한국 법조 시장에 침투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여러 차례 강조한 바가 있지만, 한글이라는 언어 체계가 한국 생성형 AI를 보호하는 절대 반지나 방어막이 될 수 없다. 자동 번역 기술이나 거대 인터넷 기업들이 그동안 검색 결과로 쌓은 막대한 한글 DB 등에 의해서 한글이라는 보호막이 무력화된 지 벌써 오래다.
글로벌 시장에 한국 법조시장도 완전히 노출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절박한 인식이 필요하다. 쓰나미가 우리 문 앞까지 닥쳐왔는데, 안방에서 서로 상대편을 비난하는 전략으로 일관하다 보면, 어느새 쓰나미가 몰아닥쳐 모두 공멸할 것이다.
-리걸테크 관련 용어의 혼란은 어떻게 재편될 수 있을지.
▲리걸테크 기업에도 많은 분야가 있고, 여러 용어가 혼재돼 있다. 조만간 제대로 된 용어가 정착할 것이다. 특히 생성형 AI만 보더라도 GPT나 챗GPT는 오픈 AI의 고유 상표 출원 명칭이다. 생성형 AI의 한 상품 서비스 이름인데 대명사처럼 쓰인다. 마치 셀로판테이프를 스카치테이프라고, 복사하는 것을 제록스한다라고 부르는 것처럼 GPT라고 통칭한다. 이것은 잘못된 용어 사용이고 생성형 AI로 바로 잡아야 한다.
-AI에 대한 입법 규제 관련 바람직한 방향은.
▲EU는 종전부터 인터넷 패권을 미국에 넘긴 지 오래됐다. 데이터 주권, 개인정보 보호, 프라이버시, 보안 등을 이유로 지속적인 규제 입장에서 IT 산업에 대한 규제 법안을 만들어 왔다. 생성형 AI의 기반이 되는 LLM 모델이 하나도 없는 EU에서는 이번 생성형 AI 시대에도 규제 쪽으로 작동시키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으로 글로벌 패권을 차지한 것처럼, 생성형 AI에 대한 글로벌 패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규제보다 산업진흥에 연방 차원에서 주목하고 있다.
한국은 너무 일찍 AI 관련 법안을 제정하는데 몰두할 것이 아니라, EU 모델보다 미국 모델이 어떻게 가는지를 잘 살피고 점진적으로 그 관련 법안을 만들어도 전혀 늦지 않다. 조바심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
손지혜 기자 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