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Image
규모의 과학기술

촉매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주요한 문명사적 전환을 불러왔다. 식물의 성장에서 필수불가결한 질소성분은 19세기 말까지 자연으로부터 공급받았지만 그 양은 턱없이 부족했다. 1906년 독일의 과학자 프릿츠 하버와 그의 동료들은 오랜 시행착오를 통해 농업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게 되는 요소비료의 원료, 인공 암모니아를 촉매반응으로 합성했다. 이를 통해 식량이 풍족해지면서 지구의 인구는 가파르게 증가했고, 20세기 산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반도체와 함께 촉매가 인류의 삶에 영향을 주는 순간이었다.

현대 문명을 한마디로 말하면 '탄소 경제'라고 할 수 있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탄화수소를 통해 에너지와 각종 소재를 얻는 과정에서 지구온난화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멈출 수 없다. 지구온난화를 극복하고 '수소 경제'(생산·저장·활용)를 현실화하기 위한 방안이 제시됐다. 호주에서 태양광 신재생에너지로부터 생산된 전기로 물을 분해(이하 수전해)해 고순도의 그린수소를 생산하고, 촉매반응공정을 통해 공기 중의 질소와 암모니아로 액화 합성해 일본으로 손쉽게 운반한다. 액화암모니아는 저장을 넘어 비축 측면에서 탁월한 이점을 가지고 있고, 전기화학 분해법을 이용해 생산된 초고순도 수소를 친환경 수소전기차에 적용하면 수소경제의 다른 명칭, '암모니아 경제' 패러다임이 완성된다.

이러한 촉매반응을 통한 화합물의 합성 및 분해공정 연구개발에서 기본은 전기화학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미 1911년 독일제국 황제 빌헬름 2세가 근대 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베를린 남서쪽 달렘에 설립한 첫 번째 연구소의 이름이 물리화학 및 전기화학 빌헬름 황제연구소라는 사실과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이면서 화학자인 패러데이가 1833년 발견한 전기화학 분해법칙은 현재 우리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기화학을 조금 쉽게 이해하자면 배터리의 양극, 음극 핵심 소재 개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이론과 실험 연구를 하는 학문이고, 인류가 오랜 기간 사용해온 도금기술의 핵심이다. 전기화학은 자발적으로 화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하는 갈바니 셀과 비자발적으로 전기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전해 셀이 있다. 산업적으로 볼 때 전자의 대표 사례는 수소전기차의 엔진에 해당하는 연료전지이고, 후자의 대표적인 공정은 수전해이다. 2가지 셀 모두 핵심은 산화 및 환원반응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전기화학 촉매(이하 전극촉매)의 개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 수소생산법과 비교해 수전해에서 경제성을 확보하려면 패러데이 전기분해 효율이 높은 반응이 필요하다. 즉, 같은 양의 전기에너지를 사용해 보다 많은 양의 그린 수소를 생산해야 한다. 그렇다면 전극촉매가 갖춰야 할 자격은 무엇일까? 전극촉매의 귀금속 포함 여부에 따른 1)경제성 그리고 전류밀도에 따른 2) 성능과 3) 내구성으로 이를 전극촉매 산업화의 트릴레마라고 부른다. 성능과 가격을 고려한 비귀금속 전극촉매는 내구성이 문제이고, 내구성이 좋은 귀금속 전극촉매는 비싸고 자원이 풍부하지 못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트릴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과학자와 산업기술자가 함께 택할 수 있는 스케일-업(Scale-up)과 스케일-다운(Scale-down)에 대해서 살펴보고 싶다. 인류가 만든 20세기 최고의 작품은 반도체로서 작아지는 것, 즉 Scale-down이 중요하다. 작아지면서 동일한 성능이 있다면 기존 크기의 관점에서 보면 Scale-up이 되는 것이다. 물질전달 관점에서 단위 면적당·부피당·무게당 더 많은 전극촉매를 쌓고, 채워 넣을 수 있는 것이 첫 번째 Scale-up 시나리오이고, 소규모 단위를 수백, 수천 개를 직렬, 병렬 연결하여 집적화시키고 치밀한 구조를 확장해 모듈과 시스템을 축구장 크기로 구현하는 것이 두 번째 Scale-up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대학과 연구소의 실험실에서 마주하는 소규모 전극촉매의 트릴레마는 전극의 대면적화, 스택모듈화, 시스템 운전 최적화라는 다양한 Scale-up 접근을 통해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 즉, 나무 한그루의 잎과 줄기를 바라보며 생기는 고민스러움은 나무 전체와 나아가서는 숲의 삶을 이해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의 과학기술계는 대학, 정부출연연구소, 기업이 각자의 나무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대학과 기업 사이에서 Scale-up 사이언스의 다리와 같은 연결 역할을 해야 하는 정부출연연구소는 연구비 수주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본연의 연구수행 역할과 책임(R&R)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과학은 흥미로움을 찾는 곳에서 출발해야 하고, 어떻게 인류의 보다 나은 삶에 도움을 주는 기술로서 발전할지는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

사족이 있다. 맥주거품이 사라지는 모습과 수소기포가 전극촉매 위를 떠나는 순간을 비선형방정식으로 이해하려는 기초과학의 매력이 있듯이 Science의 Scale-up 시도는 미하엘 폴라니의 암묵적 지식과 명시적 지식을 모두 가질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Photo Image
이재영 GIST 교수

이재영 광주과학기술원 지구·환경공학부 교수 jaeyoung@gist.ac.kr

〈필자〉'지능형 지식정보화 사회에 현장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는 이재영 광주과학기술원 지구·환경공학부 교수는 베를린 막스플랑크연구협회 프리츠하버연구소(FHI der MPG)에서 2001년 물리화학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포스코 산하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에서 재직했고, 전기화학 Scale-up Science를 비즈니스 모델로 설립한 이써스의 대표이사로 이산화탄소 재자원화(CCUS), 암모니아 에너지 벡터, 수전해 사업 분야에서 전극촉매 소재부터 시작품 규모 공정까지 학문적·산업적 파장이 큰 기초·응용연구 성과를 도출하고 있다. 한국-독일 동문네트워크(ADeKo)를 기반으로 독일과 유럽의 과학기술 방향성을 국내 흐름에 접목시키는 역할도 수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