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주도 투자생태계 전환에도…벤처투자업계 자율규제 ‘동상이몽’

벤처투자시장에 자율규제 체제를 도입하기 위한 시도가 번번히 무산되고 있다. 벤처캐피털(VC)과 액셀러레이터, 정부 등 시장 참여자 시각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벤처캐피탈협회와 액셀러레이터협회 등 벤처투자업계는 최근 민간 주도 벤처투자 생태계 조성을 위한 자율규제 도입 전담반(TF) 활동을 종료했다. 총 네 차례에 걸쳐 회의를 열었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TF 논의를 마쳤다. 중소벤처기업부도 시장 참여자들로부터 추가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TF 차원 논의를 종료했다.

벤처투자시장 자율규제 기능 강화는 업계가 줄곧 필요성을 주장해 온 사안이다. 시장 규모가 날로 커지고 투자 시장이 복잡해지는 만큼 모태펀드 등 공적기관 중심 규약만으로는 모든 현안을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벤처캐피탈협회 전임 회장단이 신년사 등을 통해 필요성을 강조해 왔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숙제이기도하다.

벤처투자업계에서는 정부가 민간 주도 벤처투자생태계 조성을 핵심 과제로 내건 만큼 민간 차원의 자체 윤리준칙 제정 등 자율규제 체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내부통제기준은 물론 이해상충방지를 위한 가이드라인 등 법률에서 규정하지 못하는 사안을 업계가 자체적으로 정하자는 취지다. 예컨대 과거 암호화폐 관련 스타트업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벤처투자업계가 투자 여부를 확정하지 못했던 것과 같은 사례 역시 자체 규약을 통해 빠르게 합의를 이뤄 나설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특히 최근 모태펀드 등 공적 부문이 아닌 순수 민간 자금만으로 펀드를 결성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이런 요구가 더 커지는 추세다. 조합과 피투자기업 간 불공정 계약에 대한 우려부터 운용사(GP)와 출자자(LP) 간 이해상충이나 지분 양도 같은 분쟁도 더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최근 개인투자조합 결성이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 역시 이런 요구를 키운다. 창업투자회사나 창업기획자(AC)가 운용하는 벤처투자조합과는 달리 개인투자조합의 경우 자격을 가진 개인이 사모로 자금을 모집한다. 여타 투자 기구에 비해 조사나 제재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기관이 아닌 개인 자금이 모이는 만큼 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해 가능성도 더 크다.

실제 중기부가 최근 실시한 개인투자조합 점검에서도 수십여개 조합이 법령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러건의 위반 사항이 나타났지만 즉각적인 조치는 물론 위반 여부를 대중이 살피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개별 조합에 대해 일일히 즉각 조사에 나서기에는 행정력 낭비도 상당하다. 한 해 결성되는 조합 수만도 1000개에 육박할 정도로 시장 규모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액셀러레이터업계는 속내가 복잡하다. 자율규제 도입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자칫 잘못하다가는 최근 활성화되기 시작한 초기 투자 시장을 꺼뜨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액셀러레이터 투자 행태에 적합한 공적 규제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분위기다. 액셀러레이터 업무를 기존 투자업계와 차별화하는 것 역시 풀어야 할 과제다.

중기부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벤처투자업계 요구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서 “더 많은 사례를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당장 논의는 중단됐지만 자율규제 도입을 위한 업계 요구는 계속될 전망이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장 규모가 커지는 것은 물론 기존 규제체계 아래서는 민간이 벤처투자 시장에 뛰어들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자체 규약을 마련하는 것부터 자율규제 위원회 구성까지 다양한 방안이 내부에서 논의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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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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