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사이버 보안업계 '3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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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사이버 보안업계에는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글로벌 수출기업, 혁신적 스타트업 등 세 가지가 없습니다.”

최근 만난 사이버 보안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이 관계자는 업계가 갖추지 못한 3무(無)를 하나하나 언급하며 근본적 문제점을 꼬집었다.

그의 말대로 사이버 보안 기업 가운데에는 유니콘 기업이 없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유니콘 7개사가 새로 탄생했다. 유니콘 3개사가 엑시트(투자회수)했음에도 전체 기업 수는 22개사로 역대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러나 이 가운데 사이버 보안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보안 1위 기업 안랩의 시가총액이 지난달 말 기준 6108억원에 불과하다. 업계 맏형이 이러한데 국내에서 보안 유니콘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게다가 안랩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의 운명에 따라 주가가 요동치는 정치테마주로 묶여 있다. 애널리스트도 안랩에 대한 사업분석과 전망에서 손을 뗀 상황이다.

글로벌 수출기업 역시 좀처럼 보기 어렵다. 보안산업 특수성 때문에 폐쇄적인 내수시장에 안주하며 스스로 유리천장에 가둔 모습이다. 그 결과 사이버 보안업계는 매출 100억~300억원대 중소기업이 즐비하다. 패권 다툼을 벌이는 춘추전국시대라기보다는 암묵적 신사협정을 맺은 듯 공존 체계를 구축한 모습이다.

이렇다 할 스타트업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은 전망을 더 어둡게 한다. 스타트업은 혁신과 역동성의 상징이다. 핀테크 기업 토스가 대표적이다. 토스는 금융권 메기 역할을 톡톡히 하며 시중은행을 긴장시켰다. 반면에 사이버 보안업계는 각종 인증 등 허들이 스타트업 등장을 가로막고 있다. 특히 국내 시장 상황에서 성장 한계가 분명한 보안 스타트업에 벤처캐피털(VC) 지갑은 선뜻 열리지 않는다. 투자 유치가 어려우니 성장은 언감생심이다.

이렇듯 기존 사이버 보안 기업은 내수시장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며, 내부에서 혁신의 싹이 움트는 환경도 갖추지 못했다. 업계 3무가 당분간 지속될 공산이 크다.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 해결책의 하나가 사이버 보안 모태펀드 조성이다. 해외에서도 벤치마킹하는 모태펀드는 벤처투자에 마중물 효과를 일으키며 스타트업 성장을 견인해 왔다. 모태펀드에서 동력을 얻은 스타트업은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키며 판을 흔들었다. 업계 3무를 깨뜨릴 주인공은 스타트업이 될 수 있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동맹을 사이버 공간으로 확장하며 사이버 안보 협력을 강화했다. 이를 뒷받침할 국내 산업계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국내 경쟁력 강화의 첫 단추가 사이버 보안 모태펀드 조성일 수 있다. 정부가 사이버 보안이 포함된 '10대 초격차 분야'의 모태펀드 조성에 나섰지만 '여럿 가운데 하나'(one of them)로는 현 상황을 헤쳐 나가기 어렵다. 우리 사이버 보안 기업이 날개를 펼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 정책 지원이 필요한 때다.

조재학기자 2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