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좋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해서 소비자 편익을 높이는 것이 첫 번째다. 그다음으로 공장이나 연구소를 짓고 일자리를 만들어서 고용을 늘리는 일도 있다.
사회적 기여는 현대사회에서 한국기업이든 다국적 기업이든 마땅히 실행해야 할 책무이자 역할이다.

2017년 연 매출 500억원 이상의 유한회사도 공시 의무가 생기면서 다국적 기업의 사회적 기여 민낯이 공개됐다. 사회 환원 창구의 기본이 되는 '기부금'조차 제대로 내지 않는 기업이 허다했다.
이들은 초프리미엄을 추구하며 드라이기부터 냄비, 밥솥, 냉장고 등 다양한 가전을 비싸게 판매하는 업체다. 한 업체는 운반비, 원자재 비용 상승을 이유로 1년에 세 차례나 가격을 올려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다국적 기업도 할 말은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기부금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기업은 친환경, 기업 간 상생 등을 실현하기 위해 캠페인이나 협력사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같은 비용은 기부금과는 별도의 회계처리가 되는 만큼 큰 틀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국적 기업의 캠페인이 '지속 가능성'이란 가치 실현을 위해 이뤄지는 것은 맞지만 상당수는 기업이나 제품 홍보 성격도 짙다. 협력사 교육은 영업 부문이 대부분일 뿐 핵심 기술 노하우를 전달할 리가 없다.
설비 투자나 일자리 창출은 어떨까. 다국적 가전 업체 가운데 국내에 공장 또는 연구개발 (R&D)설비가 있는 곳은 거의 없다. 한국시장에 진출한 글로벌 생활가전 3위 기업은 지난해 기준 임직원이 60명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지난 3년 동안 매년 감소했다.
최근 한 외국계 PC업체는 22년 만에 한국 시장 재진출을 선언했다. 3년 내 외산 PC업계 3위 달성이라는 목표도 제시했다. 이 업체는 1996년 한국 시장에 처음 진출했지만 2001년 갑작스럽게 지사 폐쇄와 완전 철수를 단행하며 공분을 샀다. 수많은 소비자가 하루아침에 수리나 교환 조치도 받지 못하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2009년 국내에 재진출했지만 안착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이후 노트북 등 PC 르네상스가 열리자 다시 한국 시장 문을 두드렸다.
소비자도 똑똑해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소비자 63%는 '제품 구매 시 기업 ESG 활동을 고려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다국적 기업이 가장 강조하는 '지속 가능성' 실현의 열쇠는 소비자와 시장의 신뢰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