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지역주의 정당 구도를 완화하며, 정치 다양성을 증진한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의 목적으로 제시한 대명제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틀린 명제도 아니다. 이 대명제를 실현하기 위해 20년 만에 소집된 국회 전원위원회에서는 나흘 동안 100명의 의원들이 '백가쟁명'식 토론을 벌였다.
그런데 의원들 목소리는 제각각이다. 국회의원 정수부터 선거구 획정, 비례대표 선출 방식에 이르기까지 당리당략과 자신의 차기 총선 당선 가능성을 놓고 눈치보기와 일방적 주장만 난무했다. 총선까지 1년도 남지 않은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말잔치만 하고 있을 때인가. 자기 할 말만 하고, 남의 얘기는 듣지 않으며, 절반 이상이 비어 있는 전원위 회의장을 보며 국민은 또 절망한다.
그러나 소통과 협치가 사라진 거대 양당의 극한 대립을 초래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반드시 뜯어고쳐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논의 과정에서 꼭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바로 '지방소멸' 속도를 늦추고 지방이 회생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저출산·고령화로 말미암은 인구 변화와 수도권 일극 체제를 이대로 방치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안다.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소멸위험 지역은 이미 절반(113개) 수준에 임박했다. 그것도 지난해 3월 기준이니 지방소멸 위기는 당장 오늘의 일이다.
정개특위 분석에 따르면 현 인구수를 기준으로 선거구를 획정할 경우, 수도권(서울·인천·경기) 의석 비중은 50%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40%를 처음 넘긴 수도권 의석 비중이 24년 만에 절반을 넘어서는 셈이다.
이에 반해 수도권과 광역시를 제외한 지방 의석수는 30%로 추락이 예상된다. 공직선거법의 선거구 획정 인구비례 기준(2:1)에 따른 것이지만 이대로 방치하는 것이 마땅한지 논의가 필요하다. 선거구 면적이 가장 좁은 서울 동대문을과 가장 넓은 강원도 홍천·횡성·영월·평창군의 면적 차이는 900배에 이른다. 그런데 국회의원 수는 똑같이 1명이다.
지방 의석수가 줄어드는 것은 그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가 국회 입법 과정과 국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지방소멸의 악순환으로 반복될 뿐이다.
그렇다고 국회의원이 몰려 있는(?) 수도권의 삶은 나아졌는가. 출근시간대에 사람이 빼곡히 들어찬 지하철에서 사람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서 쓰러진다. 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젊은이들은 결혼을 포기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합계출산율은 지방소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얼마 전 대전·홍성·강릉에서 잇따라 산불이 발생, 많은 주민을 이재민으로 만들었다. 메마른 산에서 발생한 작은 불씨가 강한 바람을 타고 삶의 터전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 안타까운 것은 초기에 산불을 잡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점이다. 이것도 결국 사람이 떠나고 인프라가 낙후되고 있는 지방소멸의 한 단면이라면 지나친 억측일까. 지금 지방소멸의 '화마'(火魔)가 번지고 있다. 국회는 언제까지 이 산불을 외면하며 역사의 죄인으로 남으려 하는가.
양종석 정치정책부 데스크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