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반도체 기업, 中에 팔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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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반도체 업체가 중국에 팔려 가고 있다. 반도체 자립을 필요로 하는 중국에 경영 기반이 허약한 한국 업체가 속절없이 넘어가고 있다. 메모리 중심, 대기업 중심으로 쏠린 국내 반도체 생태계가 낳은 결과다. 오랫동안 곪아 온 상처가 터지기 시작했다.

터치칩(IC) 전문 업체 지2터치가 중국에 매각된다. 크로바하이텍과 TG나래가 보유하고 있는 지2터치 지분 가운데 73%를 중국 토레드홀딩스그룹(Toread)이 3852만달러(약 5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5월 31일 최종 양도될 예정이다.

지2터치는 경기 성남시 판교에 본사를 둔 업력 15년 이상된 반도체 설계(팹리스) 회사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노트북 등 화면에서 손가락 입력을 가능케 하는 터치IC를 만들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 BOE에 터치IC를 공급하며 2021년에는 400억원 넘는 매출을 거뒀지만 코로나 특수가 꺼지고 글로벌 경기 침체 영향으로 매출이 크게 줄어들었다.

토레드홀딩스는 중국 베이징에 본사를 둔 스포츠의류 업체다. 중국 펀드가 토레드를 인수한 뒤 반도체 회사로 변신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토레드는 미니·마이크로 발광다이오드(LED) 디스플레이 드라이버칩 사업에 주력하는 베이징코어에너지 지분 60%를 보유하고 있다. 반도체 사업 강화의 일환으로 지2터치를 추가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안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지2터치가 중국 BOE를 고객사로 두고 있기 때문에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봤으며, 중국 정부의 반도체 육성 정책에 따라 성장 기회를 보고 인수를 추진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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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이 본사인 알에프세미도 중국 매각이 추진되고 있다. 알에프세미는 지난 3일 최대주주인 이진효 대표 외 3인이 진평전자와 경영권 변경 등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진평전자가 오는 5월 30일 200억원의 유상증자를 납입하면 경영권 양도가 마무리된다.

진평전자는 중국 진평그룹 자회사다. 진평그룹은 배터리 회사로 알려졌다. 그룹은 파트너인 블랙펄홀딩스와 함께 총 610억원을 투자, 알에프세미를 통해 이차전지 사업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는 5월 22일 주총을 소집하고 배터리 수입, 제조, 판매를 내용으로 하는 사업목적 변경을 예고했다.

알에프세미는 1999년에 설립돼 커패시터 마이크로용 소자반도체(ECM), 정전기보호소자, MEMS 마이크로폰 등 아날로그 반도체를 개발해 온 회사다. 2019년부터 적자를 기록하며 경영이 악화한 가운데 미국 정부의 규제를 피하면서 반도체 사업도 추진할 수 있는 중국과 투자가 필요한 알에프세미의 이해관계가 들어맞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인수뿐만 아니라 지분 투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기술력을 갖춘 기업 가운데 자금 여력이 부족한 곳을 전방위로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벤처캐피털(VC)이나 컨설팅 업체를 통해 팹리스와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 안정화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지분을 사들인 후 사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공산이 크다.

이서규 한국팹리스산업협회장은 “국내 팹리스들도 중국 자본의 유입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눈길을 주는 상황”이라면서 “팹리스 생태계가 취약하다는 방증으로, 국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