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계의 숙원인 복수의결권 도입이 소수 야당 반대에 부딪쳐 좌절됐다. 제도 도입을 반대하던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다수 의결을 따르겠다는 의견을 낸 반면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다만 새로운 쟁점 없이 논의만 길어지는 만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다음 전체회의에선 법안을 처리할 방침이다.
국회 법사위는 27일 전체회의에서 복수의결권 도입을 담은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기업법) 일부개정안을 계류 처리했다.
복수의결권제는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자가 보유 지분 이상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대규모 투자 유치 과정에서 창업자 지분 희석에 따른 경영권 약화 부담을 줄이는 게 핵심이다. 이번 개정안에는 창업자에게 주당 최대 10개 의결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담았다.
벤처기업계는 그간 복수의결권 도입을 주장해왔다. 창업자가 지분 희석 우려 없이 대규모 자금을 투자받아 혁신성장을 도모할 수 있어서다. 복수의결권제는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이자 2020년 민주당 총선 2호 공약이기도 하다.
국회도 벤처기업계에 호응했다. 이번 제21대 국회가 들어서자마자 양경숙 민주당 의원과 이영 당시 국민의힘 의원(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여야를 막론하고 법안을 발의했다. 소관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선 1년여간 논의를 벌이며 △재벌 대기업 총수의 세습악용 △상장사 및 대기업으로 제도 확대 우려 △지배주주 사익추구 위험 등 부작용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보이던 법안은 법사위에서 발목이 잡혔다. 2021년 12월 산자중기위를 통과했지만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1년 이상 계류됐었다. 지난달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상법원칙과 상충문제, 소액투자자 피해 우려 등을 들어 법안을 막아섰다. 이에 벤처업계는 “대주주3%룰, 무의결권주식 등 정책목표에 따라 의견을 달리하는 건 상법을 훼손하는 게 아니다”라면서 “소액투자자가 복수의결권 도입 사실을 알기 때문에 타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반박하며 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이날 법사위에서도 박주민 의원과 조정훈 의원이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박 의원은 주주 평등 원칙 위배와 실효성 문제 등을 들어 반대 의견을 냈다. 박 의원은 “지분이 많지 않은 소액 주주가 의결권 행사에 큰 제약을 받을 수 있다”면서 “무능력한 경영진까지 과도하게 보호할 수 있어 인수·합병(M&A) 시장이 위축되고 벤처캐피털(VC)이 원활한 회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VC 도덕적해이 유발 및 벤처 버블 우려 △상장 후 일몰조항 폐지 유예 또는 폐지 가능성 △재벌 대기업 세습 악용 등을 우려하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박 의원은 다수 의결에 따르겠다며 회의장을 떠났지만 조 의원은 반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법사위 위원장인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한 차례 정회를 끝에 복수의결권법을 다음 전체회의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김 의원은 “그간 법사위에서 많은 토론이 있었다”면서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반대 토론 적극적으로 하고 있지만 가장 가까운 시기에 개최되는 전체회의에선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조재학기자 2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