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직급 파괴와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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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회장님 대신 'JY', 한종희 부회장님 대신 'JH'라고 불러 주세요”

삼성전자 DX 부문은 지난달 '경영진 임원 수평 호칭 가이드'를 사내망에 공지했다. 경영진과 임원들은 사내 메신저 프로필 '닉네임'란에 본인의 호칭을 기재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종희 부회장은 지난해 타운홀 미팅 'DX 콘서트'에서도 “저를 부회장, 부문장, 대표이사 등이 아닌 'JH'라 불러 달라”며 격의 없는 소통을 강조했다.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SK, CJ 등 다수 기업이 닉네임이나 '○○님' 또는 통합된 직급 체계로 호칭을 단순화했다.

열린 소통을 강조하는 '수평 호칭' 문화가 재계 전반에 퍼지고 있다. 사원뿐만 아니라 경영진, 임원에도 적용하며 수평적 조직 문화를 강조한다. 직책·직급 대신 영어 이름이나 이니셜, 닉네임을 사용해 편하게 소통하자는 취지다. 기업 내 주축으로 성장한 MZ세대(1980년대 중반~2000년대 출생)와 교감하겠다는 목적도 크다. 권위, 위계서열에 대한 MZ세대의 거부감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실제 취업플랫폼 진학사 캐치의 설문조사 결과 2030세대 1000여명 가운데 응답자 90%는 수평 호칭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수평적 조직 문화 형성과 자유로운 의사소통으로 창의성 증진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라는 이유가 대다수였다.

MZ세대와의 소통은 기업 임원의 난제로 꼽힌다. 자칫 '라떼는'으로 대표되는 '꼰대'가 될까 두렵다. 조심스러움에 적당한 거리를 두자니 벽이 쌓인다.

그러나 호칭만 바꾼다고 조직문화가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오랜 시간 굳어진 서열 중심 기업 문화를 바꾸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직급·직책이 주는 거리감을 낮추면서 그에 걸맞게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 가능하도록 업무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과거 호칭을 없앴다가 다시 직급 호칭 체제로 돌아간 사례가 적지 않다. 호칭만 없앴을 뿐 보고체계나 업무 방식, 소통 문화는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선 설문조사에서 수평 호칭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응답자의 10%가 그 이유로 '호칭만 바꾼다고 분위기가 달라질 것 같지 않아서'를 가장 많이 꼽은 배경은 이러한 조직 문화를 대변한다.

비즈니스 모델이 급변하며 어느 때보다 신속한 의사결정과 창의적인 아이디어 발굴이 중요해졌다. 글로벌 경영 위기 속에서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기보다는 창의성을 발휘,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톱다운 방식의 관료주의적 소통이 아닌 과감한 조직 문화 혁신이 필요하다. 제도적인 호칭 평등화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 가능한 문화를 체화해야 한다. 수평 호칭이라는 작은 시도가 권위주의적 기업 문화를 바꾸고, 직원 개개인의 능률을 끌어올릴 실마리가 되길 바란다.

정다은기자 dand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