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은행원 부럽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넘치도록 지급하는 희망퇴직금에 “그 돈이면 무조건 받고 나가겠다”는 시기 어린 말이 대부분이다. '억 소리' 나는 퇴직금에 고연봉을 받는 다른 금융권 관계자들조차 혀를 내둘렀다.
구조조정은 우리 사회에서 해고와 연결돼 부정적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은행은 예외다. 20여년 전 눈물을 머금고 은행을 나간 선배 세대와 달리 최근 은행원들은 두둑한 현금을 챙기고 웃으며 회사를 떠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린 시중은행이 거액의 희망퇴직금을 제시하자 너나 할 것 없이 회사를 나가겠다고 아우성이었다.
근속연수에 따른 법정퇴직금과 특별퇴직금으로 적으면 6억원, 많으면 10억원에 이르는 퇴직금을 손에 쥘 기회를 누가 놓치려고 할까. 특별퇴직금은 본봉의 36개월치, 자녀 학자금, 재취업지원금, 건강진단비 등 명목도 다양하다.
인터넷전문은행이나 빅테크사, 핀테크 등 은행 출신이 재취업할 자리가 넘쳐나던 때이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지난해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은행에서만 220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이런 호화스러운 퇴직 행렬은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은행권의 한 임원은 “은행의 '역대급 실적' '역대급 희망퇴직금'도 올해가 끝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 몇 년 동안 경기가 좋아서, 기업과 가계가 대출을 많이 받아서 은행이 큰돈을 벌 수 있었는데 앞으론 경기가 어려워질 거고 기업과 가계도 허리띠를 졸라맬 것”이라면서 “그러면 직원들을 내보내고 싶어도 줄 돈이 없어 희망퇴직을 못 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업은 큰 위험이 없어 보인다. 호황이면 기업과 가계가 잘되니 은행 수익성이 좋아진다. 적당한 불황이면 대출하려는 사람이 늘어 '이자 장사'가 더 잘된다.
그러나 심각한 불황이 닥치면 대출하려고 은행 찾는 이가 줄어든다.
취약 부문부터 신호를 보내고 있다. 지난 1월 예금은행 가계대출이 4조6000억원 줄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 대출은 늘기 마련인데 2004년 1월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을 보였다. 개인사업자대출도 9000억원 줄었다. 2019년 6월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처음이다.
아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버티고 있지만 본격적인 경기침체에 들어서면 이들조차 대출받을 여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희망퇴직한 전직 은행원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희망퇴직한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이직 제안이 매주 1건 이상 들어왔다. 1개월이면 4건 이상인데 쉬려고 가지 않았다. 하반기 들어와 분위기가 급변했고, 이직 제안은커녕 면접에서 고배를 들이키기 일쑤였다. 아는 얼굴도 많이 봤다. 다행히 재취업했지만 경기가 어려워지는 걸 몸소 느꼈다. 나와 보니 밖은 정말 추웠다.” 희망퇴직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김민영기자 my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