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꿀벌 백신이 탄생했다. 꿀벌 개체수가 크게 줄면서 본격적으로 인류 식량안보에 경고등이 켜지기 전에 사전적인 조치에 나선 것이다. 미국 생명공학기업 달란애니멀헬스가 개발한 꿀벌 백신은 세균성 전염병인 '미국형 부저병'을 예방한다. 부저병은 한 마리의 감염된 꿀벌이 주변 벌집을 모두 초토화할 만큼 치명적인 질병이다. 꿀벌이 백신을 맞게 된 연유와 새롭게 승인된 꿀벌 백신의 효능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자.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서식지 감소·농약·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꿀벌이 급감하고 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꿀벌 수명은 1970년대에 비해 절반 정도로 짧아졌다. 꿀벌 수명을 가늠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꿀벌 둥지에서 애벌레를 채취하고 이를 우화시켜 성충이 된 꿀벌을 인공적으로 사육하는 실험을 한다. 1970년대에 진행된 실험에서 꿀벌은 평균 34.3일 살았다. 그런데 현재는 17.7일밖에 살지 못한다. 꿀벌 수명이 반 토막이 난 것이다.
실험실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꿀벌의 수명이 짧아진 증거가 있다. 반토막 난 꿀벌 수명을 고려하면 1년에 폐기되는 벌통 비율이 약 33%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수치는 실제로 지난 14년간 미국 양봉 업계가 보고한 월동 손실률인 27.6%에 상당히 가깝다. 4000종이 넘는 꿀벌 종이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다행히 꿀벌이 바로 멸종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만일 정말로 꿀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꿀벌은 지구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식량 90%를 조달하는 작물 100종 가운데 무려 70종 이상이 꿀벌 수분을 통해 생육한다. 꿀벌이 없어지면 슈퍼마켓에 진열된 음식 절반이 사라지는 셈이다. 잡초가 자라지 않아 고기도 먹을 수 없고, 목화솜을 구할 수 없어 옷을 입을 수 없으며, 커피콩을 구할 수 없어 커피를 마실 수 없게 된다.
꿀벌 수명은 왜 짧아졌을까? 환경·질병·기생충·영양 등 여러 요인이 거론된다. 농작물을 보호할 목적으로 뿌린 농약은 꿀벌의 기억력을 감퇴시키고 비행을 방해해 꿀벌 생존을 위협한다. 온난화로 너무 따뜻해진 날씨는 여왕벌이 이른 겨울에도 알을 낳도록 부추겨 약한 일벌이 태어나게 만든다. 꿀벌에 달라붙어 체액을 빨아먹는 응애는 바이러스도 옮기는 골치 아픈 기생충이다. 응애에게 기생 당한 꿀벌은 시름시름 앓거나 몸 일부가 퇴화하기도 한다. 질병에 의한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미국형 부저병은 한번 퍼지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한다. 이번에 미국 농무부 승인이 떨어진 꿀벌 백신은 이 부저병의 피해를 예방한다.
◇꿀벌 유충을 썩게 만드는 부저병
애벌레를 썩혀 죽이는 미국형 부저병은 꿀벌이 감염되는 질병 중 가장 심각한 질병이다. 감염된 둥지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나고, 애벌레는 녹아 끈적끈적한 실처럼 변한다. 부화 3일 이내인 유충이 부저병에 감염되면 유충 시기에 죽거나 번데기 시기에 죽고 만다.
이 균은 한 번 감염되면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치사성 질병을 일으킨다. 또한 자신을 보호하는 '아포'를 형성하기 때문에 한번 아포가 형성된 둥지를 한 번이라도 방문한 꿀벌은 매우 높은 확률로 부저병에 걸리고 만다. 이렇게 되면 부저병에 걸린 벌집뿐만 아니라 그 주변 벌집까지 순식간에 감염되며, 이윽고 양봉장 전체 꿀벌이 전멸하고 만다. 미국의 양봉 업자는 부저병에 걸린 벌집을 발견하는 즉시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 감염된 벌집을 파괴하고 소각할 의무가 있다.
지금까지 부저병 전파를 방지하는 방법은 감염된 벌통 등 콜로니(군락지)를 태우거나, 항생제를 사용하는 방법, 오직 두 가지뿐이었다. 이 중에 두 번째 방법인 항생제 사용은 양봉농가가 선호하지 않았다. 항생제는 꿀벌이 지닌 유익한 미생물 일부도 함께 제거하기에 다른 질병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미국 농림부 승인을 받은 꿀벌 백신은 부저병에 맞서기 위한 새로운 세 번째 방법이 될 전망이다.
◇꿀벌 백신을 접종하는 방법은?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곤충이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싸울 수 있는 항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곤충 백신 실현을 불가능하다 믿었다. 곤충도 면역 능력은 있지만 우리와 같은 척추동물과 달리 적응 능력이 있는 항체를 지니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곤충도 획득한 면역을 후손에게도 전달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달란애니멀헬스 연구팀이 벌이 세균, 바이러스와 싸우는 면역을 어떻게 획득하는지 연구해 2015년 그 답을 찾아낸 것이다. 자세한 구조는 알 수 없지만 곤충 암컷의 면역은 그 새끼에게 전달됐다.
연구팀은 자신들의 발견을 접목한 첫 번째 곤충 백신으로 꿀벌이 감염되는 질병 중 가장 심각한 질병인 미국형 부저병에 도전했다. 역할 분담이 명확한 꿀벌 무리에서는 산란 번식 능력을 가진 여왕벌이 면역 확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애벌레를 지키기 위한 백신이지만 사람처럼 주사를 이용해 벌이나 애벌레에게 직접 접종하지는 않는다. 대신 일벌이 만드는 로열젤리에 백신을 섞어 여왕벌에게 먹인다. 이를 먹은 여왕벌의 난소에는 백신이 잔류한다. 거기서 태어나는 애벌레들은 부저병에 대한 면역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아네트 크라이저 달란애니멀헬스 최고경영자(CEO)는 “꿀벌은 일종의 가축이며 우리가 닭, 고양이, 개 등을 위해 개발한 것과 같은 보호 도구가 필요하다. 부저병 백신의 성공이 다른 동물이나 곤충의 건강을 관리하는 효과적인 방법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자신들의 성과를 평가했다. 그의 말처럼 꿀벌 백신이 큰 효과를 거두길 기대한다.
글: 이형석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