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섭의 디지털 단상]금융의 본질은 자금의 중개다

Photo Image

갈등(葛藤)이란 칡나무와 등나무를 뜻한다. 등나무는 시계방향으로 줄기를 감아 올리고, 칡나무는 반대 방향으로 감아 올리니 서로 만날 수 없다. 즉, 갈등이란 상반되는 경향이 동시에 존재하는 부조화 상태다.

한국은 여전히 벤처 강국이다. 2021년 국내 벤처 투자는 7조 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78%, 연평균 30% 이상 성장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벤처 투자 비중이 미국, 중국,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4위다.

역설적으로 기업은 아우성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기업의 70.4%가 '자금 확보'를 최대 장애로 꼽았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창업 5년 차 한국 기업의 생존율은 29.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40.7%를 한참 밑돈다. '돈맥경화'는 피가 제대로 순환하지 않는 동맥경화에 빗댄 말로, 시중에 돈이 돌지 않거나 회전 속도가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든 돈이든 돌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금융의 본질은 자금 중개다. 즉 잉여에서 수요 부문으로 돈을 가장 효율적으로 옮기는 것이 금융 역할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의 투자시장은 분명히 망가졌다. 필자는 1988년 대학생 시절에 창업했다. 당시는 벤처라는 용어도 없었고, 돈을 얻으려면 은행이 유일했다. 그나마 굴뚝기업이 아니면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은행을 다니던 군대 동기의 도움으로 BC카드 한 장을 발급받았고, 남대문으로 직행했다. 내 자본금은 카드 '깡'한 85만원이 전부이다. 벤처업계에 FFF라는 용어가 있다. 초기기업의 투자는 가족(Family), 친구(Friend), 바보(Fool)나 한다는 뜻이다.

필자는 2007년 미국에서 공부하며 틈나는 대로 실리콘밸리를 다녔다.

데모데이 행사에서는 마크 저커버그도 만났는데 당시는 꼬마 벤처기업으로 앳된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미국의 창업기업은 우리와 다른 면이 있다. 우선 창업 목적이 인수합병(M&A)이다. 즉 사업이 일정 궤도에 오르면 회사를 팔 궁리를 먼저 한다. 실제 국내 투자시장의 회수 방안은 기업공개(IPO)가 거의 유일한 반면 미국은 M&A, 바이아웃이 80% 이상이다.

다음은 투자 접근 방식이다.

앞서 FFF라는 표현도 썼지만 부모님 적금 깨고, 연금 뜯어가는 자식은 없다.

미국의 레드(창업자)는 사업 구상 단계부터 유능한 컨설턴트를 찾는다. 실리콘밸리만 해도 수천명의 펀딩 플레이너(Funding Planner)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투자자 섭외부터 딜 쿠킹, 후속 라운드 준비까지 투자 유치 전반을 도와준다.

골드만삭스, 딜로이트, 베이커앤맥킨지와 같은 대형 로펌, 어카운팅 펌은 물론 수많은 부띠끄들이 활동한다.

실제 유능한 펀딩메이트를 만나면 돈 걱정은 없다. 즉 창업 천국 미국의 벤처신화는 잘 짜여진 역할 분담과 콜라보 효과다.

'아름'이란 사람이 팔을 최대한 벌렸을 때 그 둘레가 되는 길이를 말한다. '아름아름' 이란 국내 자본시장을 대표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일 것이다.

엔젤투자협회가 발표한 예비창업자의 79%가 부모·지인을 찾아간다고 한다. 이건 돈을 떠나 한국의 평균을 깎아 먹는 일이다.

덧붙이면 창업 초기에 전문투자자를 만나야 하는 진짜 이유는 자신의 비즈니스를 1차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조언에 따라 진로 및 수정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생존율도 높일 수 있다.

솔직히 한국의 요란한 벤처기업의 속살을 들여다 보면 설익음과 미숙함이 가득하다.

한국의 벤처시장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즉 풍요 속 빈곤(Paradox of thrift)으로, 통상적 부존자원의 부족으로 오는 빈곤이 아니다. 창업이란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뒤처진 제도, 자금 시장의 경직성으로 유망기업의 접근이 차단된다.

한편 국내 전업투자자 수가 최근 5년 동안 40% 증가했다. 기업형 모험자본(CVC), 모험자본(VC), 창업기획자(AC) 등 용어도 생소한 투자자집단이 3만여 곳이나 된다. 이들은 딜소싱(deal sourcing)에 목을 맨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벤처기업의 상장 비율이 고작 3.4%로, 끊임없는 기업 탐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부조화 현상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 빗댄다. 벤처 생태계의 에코시스템은 플랫폼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인프라를 바탕으로 빠르게 플랫폼경제로 들어섰고, 정부는 신분인증 권한도 넘겨주었다.

디지털시대의 만물 알고리즘이 플랫폼이고, 우리는 플랫폼을 통해 모든 재화를 공급받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돈의 목적은 재화 중개이고 자금 시장은 열려 있어야 한다. 누구든 접근 가능한 공개시장, 수많은 투자 기회와 경쟁이 공존하는 플랫폼 속에서 결이 맞는 투자자나 수익성 높은 투자 기회를 얻게 된다. 투자 유치가 100m 달리기가 될지 42.195㎞ 마라톤이 될지는 출발선에서 결정된다.

김태섭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tskim2324@naver.com

Photo Image

〈필자〉1988년 대학시절 창업한 국내 대표적 ICT경영인이다. 바른전자 포함 4개 코스닥기업을 경영했고 시가총액 1조원의 벤처신화를 이루기도 했다. 반도체, 컴퓨터, 네트워크 SI 등의 전문가로, 그가 저술한 '규석기시대의 반도체'는 대학교제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상장사 M&A플랫폼인 피봇브릿지의 대표 컨설턴트이며, 법무법인(유한) 대륙아주 고문, (사)한국M&A투자협회 부회장 등을 겸직하고 있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