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발전에는 항상 새로운 시도가 함께했다. 관습처럼 정해진 방법과 형식을 탈피하고 전에 없던 시도와 기술로 가져오는 혁신을 '창의'라고 부른다. 반면에 기존 방식을 탈피하긴 했지만, 그 의도와 과정에 정당성이 결여된 행위는 '꼼수'라는 평가를 내린다.
법도 마찬가지다. 위법은 아니지만, 틈새를 이용해 사익을 챙기는 행위는 '편법'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창의와 꼼수, 합법과 편법을 구분하는 가장 큰 잣대는 다름아닌 '취지의 정당성'이다.
국회 입법 과정에 편법과 꼼수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여야간 극한 대치가 계속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당론이라는 이름으로 취지의 정당성 훼손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입법기관으로서 무엇보다 합의와 심사숙고의 가치가 중요한 민주주의 전당에 수많은 고집으로 점철된 불통만이 남았다.
상임위원회 소위에서 논의해 합의안을 전체회의에서 통과시키고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거쳐 완성된 법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일련의 과정이 무시되고 있다. '회의 단독 개최' '강행 처리' 등 불통 속에서 '합의정신'은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이 됐다.
여야를 막론하고 양보없는 입법 치킨게임을 벌이는 셈이다.
한창 논란인 '양곡관리법'이 대표적이다. 정부와 여당의 반대가 극심하자 야권은 법사위를 건너뛰고 본회의에 이를 직회부했다. 국민의힘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법사위에서 정부·여당 입맛에 맞지 않는 법안을 계속 붙잡을 태세를 보이자 직회부라는 강수를 둔 것이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해당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고 나선 상황이다.
국회법상 법사위 심사가 60일 이내에 끝나지 않을 경우, 상임위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본회의 직회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취지는 여야가 법안에 대해 심사숙고해 합의하라는 의미이지 법안 처리를 위한 '프리패스'가 아니다.
법사위의 존재 의미도 마찬가지다. 상임위에서 의결한 법안에 대해 문구 결함이나 타법 침해 소지가 있는 지 여부를 따져야 하지,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한 관문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열리는 안건조정위원회도 마찬가지다. 논란이 되는 안건이 회부되면 최장 90일 간 토론이 가능하고 6명 중 4명이 찬성해야 의결할 수 있다. 90일간 토론은 그만큼 소통하라는 의미이고 6명의 위원은 다수당 3인과 나머지 정당 3인으로 구성해 특정 정당에 치우치지 않게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최근 안건조정위원회 상황을 엿보면 다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3인, 민주당에서 탈당한 무소속 의원이 1인으로 참여해 4대 2 표결로 법안이 처리되는 일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여야 대치국면의 시발점이 되었던 '검수완박' 법안도 같은 사례였다. 민형배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해 안건조정위에 합류하면서 법안은 4대 2로 즉시 의결됐다.
최근에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민주당 출신 무소속 박완주 의원이 안겅조정위원회에 참여, 90일의 숙의기간도 외면한 채 3시간여만에 법을 처리했다.
양곡관리법도 윤미향 민주당 의원이 안건조정위원으로 합류, 상임위를 통과한 사례다.
이들 모두 표면적인 절차는 지켰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취지의 정당성을 살렸는지는 의문이다. 정치권에선 '슬기로운 무소속 활용법'이라는 자조 섞인 비판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언제까지 본인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법사위에서 법안을 틀어막고, 다시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숙의 절차를 무시하며, 종국에는 법안을 거부하는 편법과 꼼수의 악순환을 반복할 것인지 정치권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