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재벌집 막내딸

최근 방영되고 있는 TV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는 재벌 총수 일가의 경영 승계를 위한 치열한 암투가 그려진다. 가상 기업 '순양그룹'의 총수 진양철 회장이 장자승계 원칙을 고집하는 가운데 그의 자녀 3남 1녀는 순양을 향한 야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고명딸 '진화영'은 특유의 통찰력과 승욕으로 오빠들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선보이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일찌감치 승계 서열에서 밀려났다. 고명딸로만 살라는 아버지의 경고에 “내가 고명이 아닌 메인 디시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겠다”며 눈을 번뜩인다. 1980~1990년대가 배경인 드라마이기 때문에 딸이라는 이유로 경영 승계에서 밀려난 그녀의 설정값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드라마를 시청하는 2022년 현실은 조금 달라졌다. 최근 단행된 재계 사장단 인사에는 여풍이 불고 있다. LG는 LG생활건강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로 이정애 부사장을 발탁했다. LG그룹 첫 여성 사장이다. 삼성전자에서도 이영희 DX부문 글로벌마케팅센터장이 글로벌마케팅실장 사장으로 승진하며 비오너가 출신 첫 여성 사장에 등극했다. 2011년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여성임원과 오찬 중 “여러분은 사장까지 돼야 한다”고 말한 지 11년 만의 일이다. 그룹별 계열사 정기 임원 승진 인사에서도 여성 임원들의 전진 배치가 두드러졌다. 오너가에만 허락되던, 누구도 쉽게 뚫지 못하던 재계의 '유리천장'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헤드헌팅 전문 기업 유니코써치가 공개한 조사에 따르면 2022년 국내 100대 기업의 여성 임원은 403명으로 전체 가운데 5.6% 수준이다. 지난해 322명보다 81명 증가했다. 해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의 중요성이 높아지며 여성 임원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다. 유니코써치는 2025년 ESG 공시 의무화로 여성 임원을 다수 발탁한 것이 일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성과주의 평가도 빼놓을 수 없다. 성별·국적과 상관없이 능력 및 성과를 인정받은 여성 임원이 대거 발탁됐다. 단순히 여성이라는 상징성을 앞세운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능력을 검증받았다. 여성 리더의 탄생은 또 다른 비전과 도전 의식을 고취한다.

2022년 배경의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면 진화영 역시 '장남 DNA'만을 믿고 있는 큰오빠와 경영 능력을 겨뤄 볼 기회가 공평했을 듯하다. 특유의 승욕이 '독기'가 아닌 '끈기'로 평가받고 능력은 마음껏 펼쳐 보라는 아버지 캐릭터가 있었을 수도 있다. 아직 여성 임원 비율은 한 자릿수에 불과하고, 첫 여성 사장 탄생이 뉴스인 세상이다. 오늘날 신문 지상에 헤드라인을 장식한 여성 임원의 선전을 응원하며, 수많은 여성 인재가 능력을 마음껏 펼쳐서 유리천장이 깨지는 시대가 오길 기대한다. 그 시대 드라마 제목은 '재벌집 막내딸'이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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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은기자 danda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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