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이태원 참사와 '정치적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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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전 경찰들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인명사고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점검이란 '낱낱이 검사함 또는 그런 검사'라는 의미다. 여기에 사전(事前)의 뜻을 더한 '사전 점검'이라는 단어는 결국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낱낱이 검사함'이라는 풀이가 된다. 행사가 시작 전 점검은 매우 중요하다. 사전 점검을 철저히 해야 실제 행사에서 돌발 변수가 생겨도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 사건이 일어난 뒤 이에 대응하고 수습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예측과 예방 등이 포함된 사전 점검을 하게 되면 효과는 더 커진다.

'10·29 이태원 참사'는 사전 점검과 예방이 실종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참사 발생 이후 약 3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정부와 정치권의 초점은 사건 대응 및 이후 수습 적절성 여부에만 맞춰져 있었다. 정부의 수사 대상 역시 현재까지는 소방과 경찰 등이다. 사전 점검과 예방 활동은 '정치' 영역이다. 이 행위가 곧 행정 영역이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해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뽑고,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영향력과 권력을 발휘해서 고도의 행정 업무를 하게 된다. 지자체장의 성향과 가치관 또는 관심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야기다. “사전 점검을 제대로 했더라면” “A호텔에 대해 강제 철거를 했더라면” 하는 주장들이 나오는 이유다.

사태를 옆에서 바라보며 가장 분노한 지점은 누군가의 해명이었다. 사태에 대한 지자체장의 책임에 대한 언급이 나오면 일부 정치권 인사는 '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업무가 미숙하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신입사원이라 업무가 미숙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축구 월드컵은 성장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라고 언급한 한 축구 해설위원의 말처럼 행정 수장의 위치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해야 하는 자리다. 특히 160여명의 목숨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하루아침에 사라진 상황에서 '잘 몰랐다'는 핑계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다. 행정 행위가 곧 정치 행위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의 공천 과정이나 내각 입성 과정 등을 되돌려보려는 시도 역시 당연히 없다. 이들의 실언이 나오는 맥락도 이와 비슷하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비판도 같은 맥락이다. 말단 신입사원도 사고를 크게 치거나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치면 회사의 징계를 받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입사하자마자 해고가 될 수도 있다. 만약 어느 기업의 CEO가 직원 160여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면 이는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 된다. 이것이 곧 책임이자 수습이다. 정치권이 생각하는 책임은 일반적인 의미와 크게 다른 것 같다. 정치가 국민에게 공감받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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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창기자 mobydi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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