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작은 정부'와 특허심사관 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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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청의 올해 숙원사업은 반도체 분야 심사관 증원이다. 미래 핵심 산업인 반도체 분야 심사관을 늘려 국내 기업의 빠른 특허권 확보를 돕고 심사 품질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민간의 퇴직 인력을 특허심사관으로 활용하겠다는 전략도 세웠다. 첨단기술 분야의 퇴직 인력은 기술 이해도가 높아 심사 업무에 곧바로 투입할 수 있고, 핵심 인력의 해외 유출 방지 등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특허청은 전문가 자문과 관련 업계의 의견수렴 등을 거쳐 내년에 200명 규모의 반도체 특허심사관을 증원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행정안전부는 내년 심사인력 충원 67명만 승인했다. 기획재정부의 최종 협의를 거치면 이마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실의 '작은 정부' 기조가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여당과 야당의 정쟁 속에서 막을 내린 '맹탕 국감' 속에서도 특허청의 심사 품질 강화 필요성과 이를 위한 인력 충원 목소리가 나왔다.

양향자 국회의원(무소속)은 한국의 특허 무효율이 주요국과 비교해 최대 3배 이상 높고, 지난해 기준 국내 특허심사관 수가 953명으로 중국(1만3704명)과 비교해 무려 14배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1인당 심사 처리 건수도 197건으로 가장 많고, 다루는 기술 범위도 넓어 심사관 부담이 매우 큰 현실이다. 특허 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의 심사 건당 평균 심사 투입 시간은 25.4시간이지만 한국은 10.8시간으로, 주요국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1200여명의 추가 인력 증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허청은 2026년까지 반도체 분야 특허심사 처리 기간을 10개월 수준으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지만 현재 추가 감축 등 상황을 보면 지연될 공산이 크다.

세계는 첨단기술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미래 생존이 기술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확보하기 위해 전념하고 있다. 특허권 획득이 중요하다. 기술을 보유하고도 권리를 획득하지 못하면 침해 위험성이 높고, 오히려 소송 등으로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신속하고 정확한 특허심사가 이뤄지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정부는 특허심사관 증원을 단순히 '공무원 늘리기'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첨단기술 개발과 관련 산업육성 대책에 포함해 하나의 중요 지원 분야로 시각을 넓혀야 한다. 특허청도 인력 증원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안 된다. 축적한 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도입해 심사 업무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민간의 기술 개발 속도에만 맞추지 말고 협업을 통한 맞춤형 연구개발(R&D) 추진 등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양승민기자 sm104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