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37>투 머치(too much)의 경영학

결핍과 과잉. 이런 상황이 결국 병증이 되는 건 흔하다. 희소병 가운데에서 많은 것도 결핍 탓이다. 세포 안에 들어있는 작은 기관인 리소좀(lysosome)에는 단백질 분해 효소가 있는데 이것이 결핍되면 몸 안에 불순물이 축적된다. 환자라곤 100명 안팎인 경우도 많다.

반대로 과해도 병이 되는 건 마찬가지다. 체내 호르몬 가운데 코르티솔은 에너지 저장, 면역, 알레르기 반응 조절에 정서적 안정감까지 관장한다. 그런데 이것이 과다 분비되면 병증으로 나타나고, 일상의 생활조차 힘들어지게 된다.

혁신의 관심사는 다양하다. 기업의 실패를 다루는 건 물론이다. 그리고 이건 기업 병증과 그 원인을 다루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기업 진단의 결론 가운데 태반은 결핍에 있다. 제대로 된 품질 관리가 되지 않는다면 단지 시간문제일 뿐 결론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과잉 역시 혁신 앞을 막아서는 만만치 않은 병증이다. 성공이 만든 자신감과 몰입에서 오기도 한다. 치료법이란 만만치 않다. 처치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게 문제였다는 것임을 알 때면 상황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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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일본 기업을 한번 생각해 보자. 품질관리라면 모범사례이자 모든 기업의 본보기였다. 이들에게 경쟁력 있는 가격과 고품질, 여기에다 신뢰성은 경쟁우위의 근저였다. 이것을 앞세운 일본 자동차와 가전기업의 성공담은 모든 일본 기업에 각인되기 충분했다.

D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우위는 미국을 대체하는 것으로 공고히 됐다. 이들 일본 기업의 사고방식에는 경쟁력과 품질은 동일시되었다. 더 높은 품질의 칩 생산은 엔지니어의 목표가 되었다. 품질 부서와 강력한 관리는 표준이 되고, 더 많은 검사 단계가 도입된다.

물론 더 높은 품질은 비용과 시간을 의미하기는 했지만 주된 수요처가 메인프레임 컴퓨터나 통신장비였다. 20년 내구성의 목표는 여기 딱 맞아 보였다. 산업을 지배했고, 경쟁자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산업 지형이 변하기 시작한다. D램 수요가 개인용 컴퓨터와 서버로 옮겨 갔고, 다시 DVD 플레이어나 디지털카메라 같은 전자제품으로 옮겨 간다.

그러자 품질 자체만큼이나 제품 생산 속도와 비용이 더 중요해진다. 그러니 인터페이스 사양이나 패키징 역량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조합에 일본 기업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사용자 요구에 대한 지식, 선제적 대응, 적극적 투자, 요구를 제품에 통합하는 엔지니어링의 능력은 정작 품질 중심에 묻혀 있었다. 그리고 새 밀레니엄이 시작될 무렵 대부분의 일본 기업은 이 시장을 포기한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만큼 성공의 원인을 잘 알지 못한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성공만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성공에는 그만큼 극적인 실패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대개는 이 몰락이 어디서 왔는지 캐묻지 않는다. 그리고 똑같은 함정에 빠지고, 놀라울 정도로 똑같은 모습으로 몰락을 반복한다.

그러니 기업에 당신이 왜 성공했는지 따져보라는 조언에는 실패 역사도 포함된 셈이다. 아직 이러지 못했다면 부디 지금이라도 한번 따져보라. 일단 병증이 나타나서 치료법을 찾을 땐 이미 무엇도 부질없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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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