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유통칼럼]가짜지식과 결과편향

2004년 '붉은 여명(黎明)'으로 명명된 사담 후세인 체포작전이 성공했다는 뉴스가 전 세계에 알려졌다. 증권시장에서는 후세인이 생포되면 테러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엄청난 호재로, 안전자산인 채권가격은 폭락하고 주가는 급등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예상과 달리 채권 가격은 올랐다. 그러자 블룸버그는 '비록 후세인은 생포되었지만 테러는 계속될 거라는 불안감으로 미국 국채 강세'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불과 30분 후 채권 가격이 하락하자 급하게 기사 제목을 '후세인 체포로 위험자산 선호, 미국 국채 약세'로 수정했다. 나심 탈럽이 쓴 '블랙 스완'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블룸버그 통신의 상반된 기사 제목은 사람들이 얼마나 '억지로' 시장을 해석하려 하는지 그 실상을 보여 준다. 전문가들은 주가가 오르거나 내릴 때, 환율이 상승하거나 하락했을 때 '왜 그랬는지' 이유를 그럴듯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제대로 설명이 안 되면 답답하고 불안하다. 무언가 모르는 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시장은 예상대로 움직이다가도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타난 결과를 보고 그럴싸하게 스토리를 만든다. 전형적인 '결과편향'이다.

최근 독일 폭스바겐 그룹 계열사 포르쉐AG가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에 상장했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1999년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IPO로 무려 100조원이 넘는 엄청난 규모여서 흥행 여부에 커다란 관심이 쏠렸다. 많은 우려에도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포르쉐의 상장을 지켜보면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분할 상장이 떠올랐다. 포르쉐도 LG와 마찬가지로 물적분할로 자회사를 만들고 그 회사를 상장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물적분할과 모자(母子)회사 쪼개기 상장(더블 카운팅)에 대해 이른바 전문가들은 '물적분할=나쁜 것'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주린이'(주식 초보자)들이 거기에 동조하면서 1년 이상 갑론을박하며 시끄러웠고, 기업분할과 관련해 상법 개정도 추진하게 됐다. 하지만 우리와 달리 독일에서는 특별한 문제 없이 상장이 마무리됐다. 심지어 포르쉐는 모기업인 폭스바겐뿐만 아니라 폭스바겐의 모기업인 포르쉐SE까지도 독일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다. 이중이 아니라 삼중으로 쪼개기(트리플 카운팅) 상장이 된 것이다. 포르쉐는 의결권 없는 우선주만 상장하며 10조원 이상을 조달했고, 지배력도 강화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누리게 됐다.

폭스바겐이 물적분할을 통한 포르쉐 상장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혔을 때도 주가가 떨어지거나 주주들이 항의하는 일은 없었다. 당연히 우리나라 금융위원회가 제안한 반대 주주의 매수청구권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예상과 다르게 나타난 독일의 물적분할 상장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군색한 해석을 하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그러나 결과를 보고 그럴듯하게 포장하면서도 항상 시장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제도가 문제라 하고, 같은 제도라도 결과가 좋으면 디테일이 다르다고 이중잣대를 들이댄다.

물적분할은 전문성·효율성 강화 및 대규모 투자 유치를 통한 성장을 위해 주요 사업부를 자회사 형태로 독립시키는, 기업의 중요한 전략이다. 이러한 판단은 전적으로 기업의 몫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에서든 결과가 나쁘면 원래 나쁜 제도라는 프레임이 씌워진다. 독일의 폭스바겐 사례가 LG 사례보다 먼저 있었더라면 과연 어떤 평가가 내려졌을까 궁금해진다.

경제 예측은 왜 자주 틀릴까. 경제는 정답이 있는 수학 문제도 아니고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호피(Hopi) 인디언도 아니다. 경제는 그야말로 복잡계(Complex System)다. 이 때문에 아무리 유능한 경제학자나 경제연구소라도 부동산, 주식, 환율, 금리, 무역, 국내 경제, 세계 경제를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정태적이 아니라 동태적이다. 지구에는 80억명이 살고 있다. 모든 인간은 각기 다양한 변수의 영향을 받는다. 수많은 변수는 부동산, 주식, 환율, 금리, 무역, 경제 패턴을 돌변하게 만든다.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연구에서 활용되는 라틴어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라는 말이 있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이라는 뜻이다. 이론적으로는 의미가 있지만 실제 세상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세상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언제 '블랙 스완'이 날아들지 모른다. 신냉전시대 도래,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지진, 금융위기 등 끊임없이 예기치 못한 일들이 발생한다.

시장은 심리적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호황일 때 과도하게 가격이 상승하고 불황일 때 가격 하락 폭이 커지는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 현상을 보인다. 사람들은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때는 과신, 낙관주의, 확증편향이 나타나서 가격 변동성을 크게 키운다. '양떼 효과'와 '집단사고'도 흔히 볼 수 있다.

짐 콜린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쓴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는 21세기 최고의 경영고전 가운데 하나다. 위대한 기업의 DNA를 분석한 이 책은 나오자마자 경영학 분야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불과 몇 년 만에 이 책에 등장한 위대한 기업의 대부분이 망했다. 그래서 그는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How the mighty fall)라는 책을 내고 그들 기업이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야말로 결과편향이다. 성공하면 성공할 수밖에 없었고 망하면 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 국민 생활의 필수가 된 카카오의 주요 애플리케이션(앱)이 장시간 '먹통'이 되면서 큰 혼란이 있었다. 카카오는 설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카카오뿐만 아니라도 많은 기업이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면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기업들의 경영활동에 지나치게 주주나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지금이 그러한 때다. 응원의 박수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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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