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장관님 보시기에 좋더라'

“서울역 동편과 서편 출입구 가운데 어느 곳의 광고비가 더 비싼지 아세요?”

최근 한 공무원이 던진 질문이다. 서울역은 크게 동편과 서편 2개 출입구가 있다. 동편은 서울역 메인광장으로 이어지고, 서울 구석구석으로 뻗어 나가는 버스노선이 그 앞을 지나간다. 차로도 동편 측 도로가 서편 측 도로보다 2배쯤 많아 보인다. 또 지하철 1호선과 4호선을 타려면 동편 출입구를 이용해야 한다. 행인들을 향해 마이크를 부여잡고 목소리를 높이는 시위자와 포교자들이 선택하는 곳도 동편 입구다. 서울역을 가 본 사람이라면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동편 측 유동 인구가 서편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 광고단가가 더 높다는 시장 원리는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일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출제자의 의도는 응시자의 허를 찌른다. 돌아온 답변은 역시나 뜻밖이었다. 서편 출입구 광고비가 동편보다 두 배 이상 높다는 것이다. 이유가 더 놀랍다. 정부 부처의 장·차관이 서편 출입구를 이용하기 때문이란다. 세종시 정부종합청사와 가장 가까운 KTX 오송역에서 열차에 올라 서울역에 도착한 장·차관은 서편 출입구로 나가 준비된 차를 타고 이동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공무원은 자신의 부처 장·차관이 부처 광고물을 볼 수 있도록 동편이 아닌 서편을 택한다는 것이다. 장·차관이 부처 정책의 홍보물을 봐야 '우리 부처가 일을 하고 있구나' '일을 잘하고 있구나'라고 인식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공무원 입장에는 장관과 차관, 단 한 사람에게 발휘되는 홍보 효과가 수많은 시민에 앞서는 것이다. 어느 부처이든 서편을 더 찾다 보니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오른다는 '수요와 공급 법칙'이 '실질적 홍보효과'를 뛰어넘어 강하게 적용된다. 이 같은 서울역 사례는 경제학 교과서에 실려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마찬가지 논리로 KTX 내부 영상광고 가운데 '오송~서울 구간'은 웃돈을 줘서라도 광고를 넣으려고 한다는데 공무원의 노고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입맛이 쓰다. 이는 공무원의 업무 로직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다. 공무원의 업무 방향성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국민보다 '그분'의 눈에 드는 게 더 중요하다.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수재민을 위로하는 여러 자리에서 지나친 의전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도 '공무원 세계의 시야'에는 그분만이 들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한 공공기관 직원은 어느 순간부터 기관을 위한 일과 기관장을 위한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의 자체 국정평가와 국민 눈높이의 간극은 필연적으로 느껴진다. 공직 사회가 위를 향하고 안으로만 갇힐 때 국민과의 거리는 더 멀어진다. 그러나 부처 밖 세상은 더 넓고, 부처의 존재 이유도 조직 밖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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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학기자 2j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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