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연구기관 긴축 재고해야

공공기관을 향한 정부의 긴축 요구가 매섭다. '새 정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 얘기다. 모든 정부 부처·기관이 대상이다. 당연히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과기특성화대학, 부처 직할기관 등 연구 현장도 대상에 들었다. 다른 분야의 공공기관과 같은 잣대가 적용됐고, 기획재정부로부터 안내된 내용도 같다. 기능, 조직과 인력, 예산, 자산, 복리후생 등의 효율화를 요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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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일이다. 공공기관이 방만하게 운영된다면 칼을 대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연구 현장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게다가 연구에 목적을 둔 기관은 특수성을 띤다. 한 예로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은 자산 분야와 관련해 출자회사를 정비 대상으로 보는데 연구기관의 출자회사는 곧 연구소기업이다. 창출을 독려해도 모자랄 기술사업화 모델이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앞으로 연구소기업을 만들기는 어려워진다.

가이드라인 상 기능 축소 내용도 연구 현장의 현실과 다르다. 출연연의 경우 수년 전부터 기관별 '역할과 책임'(R&R)을 정립해 왔고, 이에 따라 기관 기능을 명확히 해 왔다. 이를 계속 업데이트하고 있다. 추가로 손을 댈 여지가 극히 적다. 다른 분야도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현실에 맞지 않거나 이미 많은 긴축이 이뤄진 사항이어서 불필요한 활동 위축을 초래할 뿐이다. 축소와 감축이 이뤄진다면 우수 인력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과학기술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 쉬울 수 없다. 이미 연구 현장의 동력이 상실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기재부 등은 기관별 자구안을 받기 때문에 연구기관 역시 그 특성을 반영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긴축을 외치는 정부 방침에 반해 '우리는 줄일 것이 없다'고 나설 간 큰 기관은 거의 없다. 이미 자구안을 제출한 연구기관도 대부분 없는 살림을 쪼개는 등 '알아서 기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기관의 조율 과정에서 상황이 개선될지 악화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연구기관의 운영과 투자를 미래에 쓸 종자에 비유한다. 국가 운영 전반에 걸쳐 긴축이 필요하다고 해서 연구기관에도 칼을 댄다는 것은 이런 종자를 지금 당장 먹는 것과 같은 것으로 표현한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늘었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R&D 모태인 연구기관이 쪼그라들면 예산 증대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게 된다.

애초에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의 '혁신'이라는 표현도 이상하다. 기자도 처음 해당 가이드라인을 읽었을 때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10쪽 남짓 되는 문서에 축소(22번), 정비(12번), 절감(7번), 통폐합(4번), 최소화(4번) 등 표현이 그득했다. 문서에 이들 내용만 담긴 것이다. 기관 성과를 확대할 방안이나 내용은 없었다. 이를 혁신이라고 이르는 것이 옳은 일일까. 혹시 혁대를 새롭게 졸라맨 것을 혁신이라고 알고 있는 것일까. 공공기관, 특히 연구기관은 늘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기자의 사전에 혁신은 가이드라인 내용과 다르다.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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