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법제화' 필요한 납품단가 연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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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단가 연동제 시범운영이 '납품단가 조정협의제'처럼 용두사미로 끝나진 않을까 우려됩니다.” 중소기업 업계 관계자는 납품단가 연동제 시범운영을 반기면서도 법제화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중소벤처기업부에 의구심을 드러내며 이같이 말했다. 대·중소기업 사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행하게 맞추려면 법제화 이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원자재 가격 변동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는 제도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할 때마다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대기업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벽 앞에서 멈춰 서야만 했다.

올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제도 도입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고, 그 결과 중기부가 다음 달 1일 시범운영을 시작한다. 논의가 2008년에 처음 시작된 이후 14년의 두드림 끝에 얻은 결과다. 비록 시범운영이지만 의미가 작지 않다. 시장에서 실제로 연동제가 작동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대기업의 막연한 불안감과 거부감을 낮추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포스코, LG전자,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이 시범사업에 참여할 것으로 관측된다. 우수 및 모범사례가 쌓이면 법제화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는 게 중기부의 복안이다.

하지만 중기업계는 의심 어린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민간 자율'에 맡겨서 납품단가 연동제가 도입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실제 납품단가 연동제 대안으로 2009년에 도입한 납품단가 조정협의제는 유명무실하다. 제도 시행 이후 현재까지 납품단가 조정 협의 신청 건수는 0건이다. 거래 단절 등을 우려해 협의 테이블조차 펼치지 못하는 게 중소기업의 현실이다. 대-중소기업의 확연한 협상력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민간에서의 상생 노력에만 기대는 중기부의 태도가 중기업계 마음에 찰 리 없다. '민간 자율의 상생 문화 확산'이 단순 구호로 들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중기부는 법제화보다 어려운 '민간 자율'을 택했다. 여야 모두 납품단가 연동제 입법에 긍정 입장을 보인다. 법제화 논의가 어느 때보다 무르익었다. 여야는 민생경제안정 특별위원회(민생특위)를 꾸리고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민생특위가 중기부에 연동조건·제재 조치 등 납품단가 연동제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요구했다. 그러나 중기부의 답변이 늦어지고 있다. 중기부가 국회 입법 의지와 차이를 보이는 모습이다.

법제화 논의가 시작된 이유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민간에서 자발적인 납품단가 연동제 시행이 가능했다면 입법 요구도 없었을 것이다. 중기부가 '민간의 자율적인 제도 안착'을 명분으로 삼아 뒷짐만 지려는 건 아니길 바란다.


조재학기자 2j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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