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 상승분 반영 못해…상반기 13.1조 누적 손실 전망
사채발행 잔액도 53.2조…내년엔 회사채 발행조차 막혀
연료비 조정단가 2배 확대·기울어진 전력소매시장 개선 등
새 정부 '원가주의 원칙' 기반으로 에너지산업 손질 필요
[2부] 에너지·탄소중립 대전환 <5> 에너지 안보·전력시장 정책 방향
세계적으로 에너지 인플레이션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에너지 산업 구조를 대폭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특히 에너지 인플레이션 직격탄을 맞은 한국전력공사의 대규모 적자 문제를 계기로 전기요금제도 개선 등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새 정부 출범을 기점으로 인해 향후 전력시장을 다양화하고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규제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에너지산업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시장·거버넌스 개편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
◇'에너지 인플레이션'에 흔들린 韓 에너지 산업…한전, 직격탄 맞아
지난해 말부터 누적된 세계적인 에너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우리나라 에너지 산업이 요동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유틸리티 기업인 한전은 에너지 인플레이션 영향을 그대로 받았다. 금융정보업체 와이즈리포트가 집계한 컨센서스(전망치)에 따르면 한전은 2분기에 약 5조3500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한전은 올해 1분기에만 이미 7조7869억원의 영업적자를 내면서 역대 연간 실적이 가장 좋지 않았던 지난해 적자액 5조8601억원보다 2조원 가까운 손실을 기록했다. 현 상황대로면 올해 상반기 13조1400억원, 연간 손실은 20조~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한전은 매일 회사채를 조달하면서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한전의 사채발행 잔액은 53조2000억원에 달한다. 현 상황대로면 “사채 발행액은 공사 자본금과 적립금을 합한 금액의 두 배를 초과하지 못 한다”는 한국전력공사법 제16조 2항에 근거해 내년이면 사채를 발행하지 못 한다.
한전의 적자 누적은 에너지 원자재 가격이 무섭게 상승하는데 전기요금에 이를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실적연료비는 ㎏ 당 584.78원으로 기준연료비 ㎏ 당 338.87원 대비 72.6% 상승했다. 이에 따라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h당 33.8원으로 산정했는데, 실제로 정부에서 최종 결정된 연료비 조정단가는 0원이었다. 전기요금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h당 33.8원을 더 올려야했지만 실제로는 올리지 못한 셈이다.
정부와 한전은 올해 3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산정하면서는 연료비 조정단가 조정 폭을 분기당 한도인 ㎾h당 3원에서 연간 한도인 5원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연간한도는 그대로인 만큼, 3분기에 연료비 조정단가로 인한 연간 전기요금 인상 한도를 모두 반영했다.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은 문재인 정부 때부터 누적된 요인이 크다. 정부와 한전은 지난해부터 연료가격과 전기요금을 연동하는 '원가연계형 전기요금체계(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지만 일곱 차례 연료비 조정 중 네 차례나 정부가 유보권한을 발동하면서 급등한 연료가격을 요금에 반영하지 못했다. 그 결과 한전은 올해부터 분기당 5조원이 넘는 손실을 보고 있고 내년에는 사채발행까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민간 발전사와 신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은 한전에 전력을 판매하는 가격인 '전력도매가격(SMP)'이 급등하면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한전은 SMP 상승으로 발전사들의 전력을 사들이는 비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불과 2년 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전은 안정적인 수익을 거둔 반면에 민간발전사와 신재생에너지사업자들은 수익이 악화된 것과 반대 상황이다.
◇원가주의 기반 전기요금 개편 시급…전력시장, 거버넌스도 뜯어고쳐야
올해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인플레이션은 세계적으로 겪는 문제이지만 유독 경직된 전기요금 체계와 전력시장 구조를 갖춘 우리나라에서는 한전에 타격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민간발전사 이익을 축소하는 전력시장규칙 개정을 강행했고, 급기야는 SMP에 상한을 건 '전력시장 긴급정산가격상한제(SMP상한제)'까지 추진하고 있지만 민간 발전사들은 전력시장 대원칙을 훼손한다면서 법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다.
에너지 전문가는 당장 한전의 누적된 손실로 인해 국내 에너지산업 투자 여력이 급격히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장기적으로 탄소중립에 대응한 기술 개발은 물론 단기적으로 에너지 수급 위기까지 초래될 수 있는 상황에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선 한전 사채 발행 한도를 확대하는 등 해법을 제시하면서 전기요금 체계 개편 논의도 본격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한국전력공사법을 개정해 한전의 사채발행한도를 확대하고, SMP 급등을 초래하는 발전용 천연가스를 규제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해야 한다”면서 “전기요금은 올해는 우선 그대로 가되, 내년에도 현재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현행 전기요금 연료비 조정단가를 2배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전 적자 누적을 계기로 우리나라 에너지산업 고질 문제점인 정치에 흔들리는 전기요금 제도, 경직적인 전력시장과 거버넌스 개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우선 전력소매시장에서 우리나라 전기요금 제도를 대폭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부터 실시한 현행 '연료비 연동제'는 사실상 실패한 전기요금제도라는 점이 증명됐다.
정부 또한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시장원리에 기반한 전기요금 체계 확립을 공언했다. 산업부는 지난달 발표한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에서 총괄원가 보상원칙과 원가연계형 요금제 등 전기요금의 원가주의 원칙 확립을 제시했다. 원론적인 수준에서 전기요금 개편을 언급한 것으로 실제 이를 어떻게 구현할지가 관건이다.
정연제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팀장은 “전기요금체계 산정기준이 안 지켜지고 있는 것이 일단 문제로, 물가 통제를 이유로 정부가 개입하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면서 “향후 전기요금을 개편하는데 원가주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한전이 통제할 수 없는 비용에 대해서는 전기요금에 반영하고 한전이 효율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유인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