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혁신' 없는 K-배터리

세계 최고의 배터리 선행기술 기업이자 2010년대까지 글로벌 시장 1위 자리를 놓치지 않던 일본 파나소닉은 수 년 전부터 테슬라에 올인하고 있다. 파나소닉은 폭스바겐, 아우디, 포드 등 기존 고객사와의 관계를 서서히 정리하고 있다. 완성차 고객 수를 늘려 매출만 키우기보다는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업에 집중, 실익을 챙긴다는 방침이다. 테슬라와 함께 세계 최초로 원통형 소형전지(규격 2170)를 개발해 전기차에 활용했고, 또 세계 최초로 원통형 소형전지를 중대형화한 '4680 배터리'의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파나소닉 역시 예전처럼 활발한 영업 활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선행 기술만큼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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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중국 배터리 기업은 전 세계 완성차 기업을 상대로 왕성한 영업 활동에 나서고 있다. 어디든 입찰 소식만 들리면 무조건 달려든다. 중국 배터리 기업은 빠르게 많은 고객 수를 선점하는 데 혈안이 됐다. 중국은 산업 초기엔 한국의 배터리 인력을 흡수했고, 또 근거도 없는 안전성을 근거로 한국·일본 배터리의 자국 시장 진출을 막으며 경쟁력을 길러 왔다. 과정은 깨끗하지 않았지만 현재 글로벌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중국이 1위다. 중국은 시장 초기 한국과 일본 기업의 주요 제품인 리튬이온 삼원계(NCM·NCA) 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이보다 기술 난도가 낮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로 시장 경쟁력을 쌓아 왔다. 최근엔 한국과 일본 제품 못지 않은 삼원계 배터리까지 확보하며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부터 공급 계약을 따내고 있다. 앞으로 2~3년 안에 중국 내수 시장을 빼놓고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할 가능성이 짙어졌다.

한국과 일본 못지 않은 기술력을 확보한 데다 우리 배터리 산업의 최대 단점인 배터리셀 생산에 필요한 각종 광물·원재료 벨류체인까지 갖췄다.

CATL에 이어 비야디(BYD)까지 최근 배터리시스템의 혁신 설계 기술을 개발, 배터리의 에너지밀도를 높였다. 다른 기업들이 에너지밀도를 높이기 위해 소재 개발에만 몰두할 때 이들은 시스템 설계 기술에서 답을 찾아냈다. 중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 최대 자동차 생산국이자 중심지인 독일 안방에 공장 건설까지 투자를 단행하는 등 고객사 확보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유럽 변방에 공장을 둔 우리 기업 상황과는 다르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우리나라 배터리가 이들 중국과 일본 기업처럼 혁신에 도전한 사례를 보지 못했다.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유력 고객사 수는 여전히 중국과 일본에 비해 훨씬 많다. 하지만 미래 시장 상황은 달라질 공산이 크다. 중국의 값싼 배터리가 쏟아지는 가운데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광물·원재료 가격 상승과 공급 물량 차질 탓에 완성차 기업들이 배터리 내재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배터리 기술 평준화는 완성차 업계에도 불어닥칠 일이다. 혁신 없이는 살아남지 못한다. 이미 존재하는 기술에 조금 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덧입히고 덧입히는 작은 기술 말고 경쟁사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혁신 기술이 필요하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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