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DX문화살롱](26) 글로벌 강국의 관문, 해양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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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순조 1년) 신유사옥으로 정약전·정약용 형제는 사이좋게 귀양길에 올랐다. 전라도 땅에서 헤어졌는데 동생은 강진, 형은 흑산도에 각각 유배됐다. 동생 정약용은 귀양지에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 여유당전서 등 정치·경제·사회·문화·과학 등 전 분야에 걸쳐 500권의 저술을 남겼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이 봐야 할 목록이다. 요즘도 목민심서를 즐겨 읽는다는 공무원이 많다. 그러나 이 칼럼의 주인공은 형 정약전이다. 나라 걱정만 하던 동생과 달리 정약전은 어민과 어울렸다. 바다에 관심을 두고 자산어보와 표해록을 썼다.

나랏일을 하던 선비가 물고기에 관심을 보이다니 특이하다. 자산어보는 19세기 흑산도에 살던 어류, 갑각류, 조개류의 명칭·분포·생태를 상세하게 적고 있다. 어민의 증언·관찰·견문을 토대로 했고, 어류를 해부해 보기도 했다. 어류의 아가미 호흡과 구조에 대해 연구하고, 아귀가 낚싯대 모양의 촉수를 써서 먹이를 유인하는 행태도 적었다. 상어의 태생과 습성, 서식지에 따라 차이 나는 어류와 그 특징을 적고 있다. 청어는 척추골 수가 영남산이 74마디이고 호남산이 53마디라고 썼는데 해부를 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내용이다. 먹이 포획, 계절별 생물 분포와 같은 생태학적 특징도 적혀 있다. 어류의 요리법과 맛도 나온다.

표해록은 흑산도 어부 문순득이 홍어를 잡으러 갔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한 이야기를 적었다. 오키나와, 필리핀, 중국을 거쳐 약 4년 만에 돌아온 이야기를 듣고 썼다. 1부에는 출항 이후 표류하게 된 경위와 귀국까지 과정이 시간 순으로 기록됐다. 표류 기간에 머문 곳의 지명을 밝히려고 애썼다. 2부에는 표류한 오키나와·필리핀의 풍속, 주거, 의복, 토산물과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3부에는 조선어, 오키나와어, 필리핀어를 비교한 112개 단어를 언어표로 기록해 놓았다. 가는 곳마다 오래 체류해 생활, 문화에 대한 서술이 실질적인 경험에서 우러나 생동감이 있다. 오키나와의 장례문화 및 신분별 의상과 필리핀의 닭싸움 등 생활, 종교, 가옥구조, 국제무역을 하는 선박 묘사 등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하다.

조선 정부가 정약전을 기용하고 자산어보, 표해록 같은 해양데이터를 충실히 관리하고 업데이트를 계속해서 활용했다면 우리가 일제강점기를 만났을까. 구한말 그 어려운 시절에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지도 모른다.

인공지능 시대에 데이터가 중요하다. 아쉬운 분야가 해양데이터 영역이다. 해양은 육지의 4배에 이르고, 외국과 접하는 관문이다. 해양데이터에는 어업, 조선, 항해, 재난, 오염, 질병, 건강, 관광 등 다양한 데이터가 있다. 정부와 민간이 가지고 있는 다른 데이터와 융·복합하면 활용 확률이 더욱 높다. 개인정보 안전조치를 바탕으로 외국과의 데이터 교류도 중요하다. 정부도 해양관측망, 해안선 조사측량, 해저정보, 기온·기압·풍속·풍향 등 해양기상정보, 수온·염분 등 해양물리정보, 용존산소, 인산염인 등 해양화학정보, 조류, 생체량 등 해양생물정보, 해양지질 등 해양데이터를 표준화해서 수집·활용 및 연구개발에 이용하고 있다. 수산자원 고갈, 풍력발전 등 쟁점 현안에서도 수산물 개체수 및 먹이가 되는 플랑크톤수 등 데이터를 들어 설득하면 효과적인 분쟁 조정이 가능하다. 기후 온난화, 기상 재난 등 대비도 중요하다. 풍력발전, 원유가스 시추선, 해양과학기지, 수중로봇 운용, 해저케이블 구축 같은 해양개발에서도 수온·파고·풍향·풍속 등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여기서 그쳐선 안 된다. 21세기 정약전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글로벌 강국이 되기 위해 해양데이터를 축적, 관리, 활용 및 국제협력을 추진하는 거대 프로젝트로 만들자. 어민 등 온 국민이 참여하는 프로젝트여야 한다. 정약전이 어민과 어울리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듯이 정부는 귀를 열고 마음으로 담아야 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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