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에너지헌장조약(ECT)을 개정해 화석연료 프로젝트 투자보호를 중단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최근 EU 역내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증하자 탄소중립을 위해 강력 대처에 나섰다. 다만 바이오매스·바이오가스 등 친환경 에너지는 제재 대상에서 빠질 전망이다.
EU와 영국은 내년 8월 15일 이후 신규 화석연료 관련 투자에 대한 법적 보호를 원칙적으로 중단하고 일부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ECT 개정안 제안에 합의했다.
ECT는 구소련 지역 독립국과 유럽 국가가 1994년에 체결한 에너지 투자자 보호 조약이다. 구소련 지역의 화석연료에 투자하는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으나 유럽 환경정책으로 피해를 입는 기업이 증가하자 관련 보상 청구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앞서 네덜란드 정부가 2030년까지 석탄 화력 발전소를 폐쇄키로 하자 2015년 가동을 시작한 독일 에너지 기업 RWE 발전소가 '조기 폐쇄' 위기에 빠졌다. 이에 RWE는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14억유로(약 1조9050억원) 규모 소송을 냈다.
ECT 발효 이후 정부를 상대로 한 투자자 소송이 급증하자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 이후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ECT 조약의 화석연료 관련 투자에 대한 법적 보호 중단 요구가 확산해 왔다. EU집행위는 ECT 조약의 현실과의 괴리를 인정하며 조약 개정에 관해 4년간 협상을 진행해 왔다. EU는 최근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산업계 생산 활동이 회복되고 이동수요가 증가하며 지난해 EU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년 대비 7%가 늘어 전 세계 평균(5.7%)을 넘어서자 적극 개입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은 석탄화력발전 운영, 천연가스·원유 시추 등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제제를 본격화한 반면, 바이오매스·바이오가스·수소·암모니아·합성연료 등 기타 파생상품은 ECT 보호 대상 투자 프로젝트로 인정할 것을 제안할 예정이다.
다만 향후 ECT 투자자가 국가 분쟁해결제도(ISDS)에 제소해 각국 정부가 추진하는 친환경 전환 정책이 좌초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조빛나 한국무역협회 브뤼셀지부장은 “EU집행위는 ECT 조약 관련 분쟁해결을 ISDS 대신 UN 국제통상법위원회(UNCITRAL) 산하 다자간 투자법원을 통한 분쟁 해결로 대체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미 진행 중인 화석연료 관련 투자의 경우 투자 보호 중단 관련 규정 발효 후 10년간 해당 투자에 대한 법적 보호는 지속되며 10년 경과 후 중단될 예정이다.
조 지부장은 “EU와 영국은 11월 예정된 ECT 당사국 회의에서 54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를 얻어 ECT 개정안 합의를 시도할 것”이라면서 “개정안이 승인되면 4분의 3 이상 당사국이 서명으로 발효되는데 향후 수년 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준희기자 jhlee@etnews.com